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불완전한데 완전을 꿈꾼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인간은 모순덩어리이고, 위선적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위선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건 그들은 정적의 불완전성을 끊임없이 여론화하고, 야비하게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 잣대가 언제든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정치판이라는 비이성적 전쟁터에서는 일단 상대방을 죽이고 보자는 전략이 더 잘 먹힌다. 그리고 승리하면 완전성의 기준은 승리자가 만들면 된다. 우리네 후진 정치 문화의 한 단면이다. 어떤 정치적 사안에서든 나도 완전하지 않다는 걸 처음부터 밝히고 함께 논의해 가자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완벽한데 항상 쟤들이 문제라고 한다. 팬덤을 형성할 때에는 유리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화살이 되돌아 왔을 때에는 훨씬 치명적일 수도 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자살을 했다. 비서를 성추행했고, 그녀에 의해 고발된 상태라고 한다. 전형적인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었을거라 짐작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칭 페미니스트로서 미투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정치적 행보를 쇼가 아니라 그에게 내재된 정치적 신념이라고 믿었고, 거기에는 적어도 그는 평등의식을 가진,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을거다. 그렇기 때문에 성추행이 밝혀지는 순간, 그의 정치적 생명은 사실 끝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도 모를리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정치적 생명을 포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생명은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 그리고 그게 정상적인 선택인데 - 그는 권력없는, 비난받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나보다. 시민들과 정적들의 공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고, 가해자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하며, 나 아니어도 훌륭하게 정치할 사람 많다고 후배들에게 자리 물려주며 정계 은퇴한 후, 친근한 동네 아저씨나 아줌마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가? 끝까지 찌질하게 굴다가 궁지에 몰려 퇴출 당하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만지긴 했지만 성추행은 아니라고 변명하고... 한번도 '제대로' 은퇴하는 사람을 못 봤다.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는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더더욱 그럴거다. 그런 이유인지 우리는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진 정치인을 만나지 못했다. 항상 모든 정치인이 똑같다. 내가 하면 투자고, 쟤가 하면 투기고, 내가 하면 절세고, 쟤가 하면 탈세다. 성추행으로 내가 고소당하면 꽃뱀에게 당한거고, 쟤는 파렴치범이다. 언제까지 이런 후진 정치인들의 정치 문화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지...
박원순시장이 그냥 스스로 인간적인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치사하게 변명하지 말고,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죄가 있다면 벌 받고, 은퇴해서 동네의 평범한 아저씨로 사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박원순 시장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바랬다면 너무 큰 욕심인가? 우리네 정치판은 왜 죽거나 죽여야 하는 원시적인 사냥터가 되어야 하는지, 왜 우리네 정치인 중에는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이 없는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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