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조직이야, 조폭이야?

사회선생 2020. 7. 16. 13:21

'쟤는 조직 생활에 적응을 못해.' '쟤는 지만 잘났어. 누군 몰라서 참고 살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될 거 아냐?' '쟤 부적응 또라이 아냐?' '쟤 원래 이상한 애지?' '야, 이 정도 가지고 문제 삼으면 문제 아닌거 없어.'  

그들의 기준에서 봤을 때 웬만큼 싸가지 없는 막가파 캐릭터가 아니면 조직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바로 이의 제기하며 항변하기 쉽지 않다. 이야기해 봤자 저런 이야기나 들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위계가 엄격하고, 상급자의 권한이 강한 조직일수록 이런 분위기는 더 심하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라고 여기지 않으며 제기한 사람을 문제시하거나 이를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누르고, 조직적으로 은폐한다. 그런 면에서 체육회나 공무원 조직은 매우 견고하다. 철인3종 감독의 선수 폭행 사건이나 박원순 서울 시장의 성추행 사건은 그 조직의 특성과 맥을 같이 한다.

혹자들은 왜 수 년 동안이나 참았는지 이해가 안 된단다. 그게 이해가 왜 안 되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꼭 인간이 경험해야만 진실을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해자를 영웅시하며 두둔하는 조직에서, 그 조직에서 나왔을 경우에 미래와 생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자유로울 수 없다. 때로는 참을만하다고 여겼다가, 때로는 진짜 자신에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생각했다가, 때로는 타인에게 괴로움도 호소했다가.... 아마 혼자서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불안하게 조직생활을 했을거다. 피해자는 점점 황폐해져갔을거고 가해자는 점점 수위가 높아지며 자신의 죄의식이 약해졌을거다.   

만일 처음부터 쉽게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조직문화였다면, 피해자의 호소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주는 건강한 조직이었다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윈윈이었을거다. 피해자는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보호되었을거고, 가해자는 가벼운 징계로 끝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육회나 서울시 공무원 조직 문화에는 폭력의 단절을 끊어줄 어떤 장치도 없이, 피해자를 조직 속에 순응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다 겉잡을 수 없이 사건을 키워버렸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좋을게 없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글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참 아픈데, 진혜원 검사가 박원순의 팔짱을 낀 사진을 sns에 공개하며 자신도 성추행 당한거냐며 비아냥거렸단다. 검사 조직도 상명하복의 전형적인 남성 조직 문화를 가진 곳이다. 여검사들이 많아졌다고 양성평등 문화가 형성되는게 아니라 남성적으로 생각하는 여검사들이 많아졌을거다. 남성처럼 보여야 그 조직 내에서 성공할 테니.... 범죄를 다루는 검사 조직도 저럴진대 다른 조직은 오죽할까? 후배 여검사가 진혜원검사에게 성추행 고민 상담을 했다면 무슨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런 조직 속에서 성추행 당했다고 바로 이야기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이라고? 

오늘도 어느 지방의 공무원이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조직이 문제이건만 배운 놈들 조직이든 아니든 이 놈의 조직 문화는 도무지 바뀔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무슨 조폭도 아니고... 남성들의 성역이었던 대부분의 사회 조직에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남성들은 늘 해 오던 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고 투덜거리는 것만 같다. 거기에 남성이 되고 싶은 여성들까지 가세해서... 세상이 바뀌었다. 당신도 바뀌고, 조직도 바뀌어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정신을 차릴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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