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건드려서 이전보다 나빠지는 경우를 종종 봐 왔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료들이 바뀔 때마다 업적을 남기기 위해 이전 것을 갈아 엎어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머리 나쁜 사람이 권력 잡았다고 휘두를 때가 제일 겁난다. 맥락과 문화는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학자들 말만 들으며 정책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반대하면 교묘하게 교사들을 '철밥통 적폐'로 여론화하며 교사가 아닌 학부모나 기타 사회 구성원들과의 싸움을 조장한다.
새로울 것도 없다. 입시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는 여론을 앞세워서 교사들을 무능한 철밥통 적폐로 둔갑시켜 학부모들과 패싸움을 부추기더니 결국 없던 일로 하자며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런데 요즘 부동산 정책을 보고 있으면 비슷한 생각이 든다. 제도는 내재적인 싸움과 갈등의 소지를 줄여주어야 하는데 부동산 관련 법을 동네 이장 교체 하듯이 갈아 치우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을 이원화하여 싸움을 붙이고 있다.
항상 그렇듯이 거기에는 단순 무식한 흑백논리가 내재돼 있다. 내 편은 무조건 옳고 네 편은 무조건 틀렸다는 그들의 사고 방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임대인은 갑이며 부자이고, 임차인은 을이며 서민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한 오류이건만 싸움을 할 때, 선거를 할 때, 정치를 할 때에는 확실한 내 편 네 편을 단순하게 가르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손해볼 게 없다.
내 편이 공고해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 만큼 그들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 편인지 네 편인지 모를 사람들은 숫적으로 많아도 별로 의미가 없다. 소수라도 목숨 바쳐줄 내 편이 많은 것이 도움이 된다. 이미 '대깨문'으로 재미를 보고 있으니 학습도 충분히 됐다.
임대인과 임차인, 갑과 을, 부자와 빈자는 그렇게 단순화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교사와 학부모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화해서 정책을 만드니 부작용도 많고 갈등도 많고 편법이 판을 친다. 그걸 모를 리 없지만 표와 인기나 얻자고 작정하면 못 할 것도 없다. 싸움은 너희들이 하고 그들은 싸움 구경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부동산값을 잡는게 목적이 아니라 부동산 값을 잡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표만 얻으면 그 뿐이다.
학생들에게 계급론을 가르칠 때에도 말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이원화한 계급론은 지나치게 단순화돼 있어서 오늘날의 계층 분석에는 적절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시장에 방앗간 하나 가지고 운영하며 백만원 버는 사람이 부르주아이고, 월급 천만원 받는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 않냐고...
그런데 임대인과 임차인을 어떻게 그렇게 명료하고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중딩 고딩만도 못한 사고의 수준이 아닌지... 시장주의자가 아닌 나같은 사람도 요즘 돌아가는걸 보면 제정신인가 싶은데, 아닌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언제까지 패싸움을 시키며 싸움 구경이나 하는 정부를 봐야 하는지 한심하다. 무능함을 여론정치한다고 포장하면서.... 그럴거면 왜 권력을 잡지? 책임은 지기 싫고, 권력은 유지하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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