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초임 시절 학급에 운동부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감독선생님 관리(?)를 받았기 때문에 담임이라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 나오는 날보다 나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고, 그나마 가끔 나오는 수업 시간에는 주로 잠을 잤기 때문에 평범한 학생들과는 생활 방식이 달랐다. 학교 규범같은 것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서워하는 존재는 딱 한 명, 감독이었다.
내야 할 서류를 안 낸다든지, 담배라도 피운다든지 했을 때에 감독에게 이야기하면 해결됐다. 감독이나 코치선생님의 말은 매우 잘 들었는데, 감독은 운동부 선수들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물론 생사여탈까지야 아니겠지만 적어도 대학 정도는 코치나 감독의 도움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야 하고(개인 능력이 안 되면 단체전으로라도), 그래야 특기생으로 대학갈 수 있고, 대학이라도 가야 나중에 취직을 하든 실업팀으로라도 가든 할 수 있는데, 대회에 나가게 해 주는 것도, 팀을 짜 주는 것도 감독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선배의 폭력이나 코치나 감독의 폭력은 일상인 것 같았는데, 그건 그네들의 문화로 수용하는 듯 했다. 그 때에는 교사들도 학생들을 체벌로 훈육하던 시절이었으니 운동 선수들은 더 했을거다.
30년 가까이 지나 세상이 바뀌었건만, 아직도 스포츠계에는 폭력이 만연한가보다. 철인3종 경기 선수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재능을 가진 22살밖에 안 된 국가대표 선수가 온갖 모욕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도와달라고 이리저리 손을 내밀었건만 모두 그 손을 뿌리쳤고, 결국 선수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 사회가 그 선수를 죽인 셈이다. 어떻게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었단 말인가? 듣기만 하는 나도 분하고 억울해 팔짝 뛰겠는데, 그 선수나 부모는 어떤 감정일까, 감히 이야기하기 힘들다.
최선수는 어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훈련이 곧 삶인 생활을 했다. 최선수에게 폭행을 가한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최선수와 함께 했다니 그 때라고 달랐을까? 훈련은 폭력의 연속이었고 맞는 것은 그냥 일상이었을게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점점 황폐해졌고,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만일 성인이 된 이후에 그 감독을 만났다면 그렇게까지 맞으면서 버티려고 노력하진 않았으리라...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드는 생각.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합숙하면서 운동만 시키는 엘리트 스포츠는 사라져야 한다. 매우 민감한 나이이며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나 평범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가스라이팅을 당하기 쉽다. 자신이 가는 길밖에 없는 것처럼 몰면서 더 의존하게 하고, 그러면서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높다. 폭력이 아니라도 해도, 이런 식의 훈련은 건강한 성장을 가로 막는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차단당한다. 혹여 운동으로 춤으로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제발 바라건대 그 조폭같은 체육횐지 뭔지 하는 조직은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할 거 같다. 그 동안 감독이나 코치의 선수 대상 범죄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경험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실적이 좋다고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건만 그들만의 세계에서 폭력은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이었던게다. 금메달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의 생명이고 선수들의 안전이고 선수들의 인격이다. (그런거 다 생각하며 금메달 딸 수 없다고? 그럼 그만두시라. 그건 능력이 안 되는거니까... 동물도 폭력으로 훈육하면 안 되는 시대이건만 어디 사람을 때려? 아, 진짜 생각할수록 열받네...)
최선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일벌백계하며 체육회가 다시 재편되는 기회가 되길... 폭력없는 사회가 되길... 최선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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