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를 0으로 놓고, 좌우를 선악의 정도로 가는 함수를 만들어 놓는다면, 세상엔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보다 훨씬 많을거다. 물론 가운데 언저리 쯤에 몰려 있겠지만 그래도 악보다는 선쪽에 조금 더 많은 분포를 하고 있을게다. 만일 악한 사람들이 많았다면 사회는 아무리 도덕이나 법으로 규제를 해도 유지되기 힘들었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접하는 미디어들이 주로 악행을 다루기 때문이다. 악행은 유감스럽게도 선행보다 임팩트가 큰 사회 문제이고, 미디어들은 악행을 다룰 수밖에 없다. (물론 다루는 방식이나 관점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 아픈 길고양이를 데리고 가서 치료해 살려주는 선행을, 누군가는 길고양이를 학대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 보자. 선행은 선택적 행위지만 악행은 금지 행위이고, 선행의 영향력보다 악행의 영향력이 더 크다. 사회적 영향의 정도를 따진다고 해도 병이 낫는 긍정적인 영향과 폭행으로 죽는 부정적인 영향의 정도를 - 공리주의자도 아닌데 계산을 하려고 하네 - 따진다면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클 거다. 혹은 마이너스이기때문에 더 크게 느껴질거다. 우리네 주머니도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에 더 민감해지지 않는가?
그런 이유로 나는 나쁜 사람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소위 문제아에 대한 맞춤형 교육은 없다. 학부모와 가정 환경에서 촉발되어 학교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이 퍼져 나갈 수 있는데, 이를 가정이나 학교에서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범죄자가 혹은 범죄까지는 안 가더라도 이웃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면이 훌륭한 학생에 맞춰진 교육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 학생 한 명으로 국가 전체가 먹고 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모든 면이 총체적으로 문제인 학생에 맞춰진 교육도 필요하다. 그런 학생 한 두 명이 나중에 연쇄 살인범이라도 된다면 그건 더 심각한 문제 아닌가? 범죄자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채 방치된 사람들이 많다. 그를 위해서도, 위험과 공포를 야기하는 나쁜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은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악행이라고 생각되는 행동들을 하는 어린이나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갖고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17살짜리 청소년이 자신을 도와준 41살 아저씨가 자신에게 훈계했다고 때려죽인 후에 정당방위로 위장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칼로 그어대며 증거를 만들려고 했단다. 정말 구제불능이었을까? 얘는 어떻게 하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이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교육은 정말 불가능할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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