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떨어진 불똥

사회선생 2020. 6. 12. 10:13

소설은 시대를 반영한다. 소설을 기초로 만든 영화는 특유의 해석으로 그 소설의 내용을 영상으로 구현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 백인 농장주들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나름대로 시대의 한계를 뛰어 넘어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은 매우 매력적이고 인상 깊었고, 영화 역시 화려한 남부의 생활상을 구현해내며 그 자체로서 매우 가치 있는 작품이다. 스칼렛 오하라가 아무리 흑인 노예들의 희생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그것 당시의 삶이고, 문화이다. 어느 인간도 시대와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예술 작품을 시대의 정치적 잣대로 단죄하는 것만큼 무섭고 위험한 일도 없다.

그런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흑인 노예제를 미화한 영화라며 비판을 받고 있단다. 미국의 스트리밍서비스 HBO 맥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당시 미국 사회에 흔했던 윤리적, 인종적 편견 일부가 묘사돼 영화 목록에서 삭제했다고 발표했단다. 이런 엉뚱한 불똥이 어디 있을까? 백번 양보해서 남부 백인 지주의 삶을 향수처럼 여기고 가슴 속 깊이 동경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대리 만족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현될까? 오히려 그 때의 비인간적인 흑인의 삶을 비판적으로 보며 탄식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회 교과서가 되지는 않을까? 어쨌든 과거의 예술 작품까지 문제 삼는 것은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다르지 않다. 그런식의 해석이라면 아마 과거의 예술 작품은 모두 삭제해야 할 것이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자행되는 문화 말살, 문화 탄압으로 중국은 얻은게 없다. 훌륭한 예술 작품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고, 예술가들은 죄수가 되어 피를 흘렸으며, 대중은 공포에 떨며 예술작품조차도 마음대로 향유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의 흑인 그리고 양식있는 백인들이 인종 차별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충분히 그럴만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예술 작품까지 들고 넘어가는 것은 미국의 매커시즘이나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다르지 않다. 새롭게 해석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만들어야지, 과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폐기처분하려는 정치적 행동은 또 다른 폭력이다. 예술을 정치적 잣대로 해석하는 것까지는 자유지만, 이를 폐기처분하려는 행위는 끔찍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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