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입시공화국의 클래스

사회선생 2020. 5. 15. 11:23

수능날, 공무원들 출근 시간도 늦춰지고 듣기 평가하는 시간에는 비행기도 이착륙이 금지된다. 대중교통의 운행 시간도 변경되고, 경찰은 시험지 운송과 수험생의 이동에 동원된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수험생들에게 수능보다 중요한 것은 없고, 학부모에게는 자녀의 대학 입시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며, 그들을 이해하는 국민들은 기꺼이 그들을 지지한다. 온 국민이 완벽하게 합의한 입시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대학 나와야 먹고 살 수 있다고, 대학 나와야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학에 대한 열망은 생존 본능에 가깝다. 공부는 하기 싫어도 대학은 죽어도 가야 하는 나라.

그런데 정말 죽어도 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코로나 때문이다. 가끔 우리 사회의 위기 상황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문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입시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의 공포를 뛰어 넘는거다. 대학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판이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개인적인 차원으로 보자면 죽어도 대학에 가야하겠지만,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해 보면 사실 지금같은 시기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된다. 대부분의 성인 조직이나 다수의 소규모 조직과 달리 학교는 미성년자들이 절대 다수인 대규모 조직이라 매우 취약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딱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걱정하는 것은 등교해서 수업을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입시에서 자신들만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과 그에 따른 공포감이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내 아이의 대학 낙방은 훨씬 큰 공포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교육부는 등교를 하냐 마냐가 아니라 이 입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대학 입시때문에 등교를 강행하겠다는 근시안적인 정책을 내 놓을 것이 아니라 입시 정책의 수정안을 내 놓아야 한다. 일단 등교해 보고 문제 생기면 그 때 대처하자는 하는 건 너무 안이하고 무책임한 대책이다. 교실 1미터 간격 유지, 미러링 수업같은 한심한 이야기를 기사로 보고 있자니 쓴 웃음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