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열차가 개봉되어 국내 흥행 기록을 깨 나가고 있다고 한다. 봉준호는 우리나라 상업 영화의 격을 높이는 것 같고, 송강호는 여전히 자기 몫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관련된 뉴스를 보다가 문득 ‘우리에게 왜 여자 송강호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강호는 연기력 하나로 인정받는 최고의 배우이다. 몸매도, 얼굴도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 정도지만, 탁월한 연기력으로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였으며,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자 배우 중에는 연기력만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매우 드물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해 보았다. “평범하게 생겼는데, 잘 나가는 주연급 남자 배우 누가 있을까?” 송강호, 설경구, 유해진, 류승범 등이 나온다. 하정우, 최민식, 한석규, 박해일 등도 거론되었으나 학생들 사이에서 그 정도면 잘 생긴 편이다, 아니다 논란이 되었으므로 접어두고! 주연급 여자 배우로 바꿔 똑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 “......”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한참 만에 누군가 공효진이라고 대답하자, 한 녀석이 말했다. “야, 몸매를 보라구. 평범하지 않거든!” 그러다가 “김수미!” 누군가 자신 있게 외친다. 내가 한 마디 했다. “나이 든 것과 평범하게 생긴 건 다른 차원이거든. 그녀도 젊을 때에는 김태희급이었어.”
영화배우를 꿈꾸는 ‘못생긴’ 남학생에게는 “그래, 연기만 잘 하면 영화배우로 성공할 수 있을거야. 열심히 해 봐” 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여학생에게는 그렇게 말하기 힘든 현실이다. 운이 좋아 영화배우가 된다고 하더라도 단역에 머무를 가능성이 많으니까... 모르긴 해도 영화 시장에서 자괴감에 빠진 여배우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보다 연기를 훨씬 못하는 ‘예쁜 배우’들은 주연을 탁탁 꿰어 차는데, 자기는 그녀들보다 훨씬 연기를 잘 해도 주연은커녕 단역이라도 땡큐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테니까...
연예계는 외모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다는 특수성을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어느 분야에서든 ‘능력’보다 ‘외모’가 중시되고,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여학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대부분 성형외과로 달려가 눈과 코를, 턱을 맡긴다. 그 뿐인가? 먹고 싶은 거 참고, 하고 싶은 거 미루고 운동선수처럼 살도 빼야 한다. 평범한 학생들조차도 그렇게 내몰고 있는 현실이다. 너 정도면 충분이 이쁘다고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여전히 외모의 중요성을 여기저기에서 강조하고 있으니, 교사의 말 따위가 먹히겠는가? 개그콘서트의 '시스타 29'를 보면 박지선과 오나미가 잘 생긴 남자로부터 모욕당하고 거부당하는 유머가 나온다. 그냥 못 생겨서 당하는 모욕이 웃음 포인트다. 못 생긴 여자를 유머의 소재로 삼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만일 박지선이나 오나미를 닮은 여자아이가 어느 초등학교에 있다면? 그 아이들은 스스로 못 생겼다고 생각할거고, 그 아이를 놀리는 아이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나만의 기우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외모가 능력이나 인격보다 우선시되는 사회는 후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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