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타인의 취향

사회선생 2013. 8. 2. 23:00

 채식주의자인 친구가 있다. 채식주의자에도 등급(?)이 꽤 여럿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비건이다. 쉽게 말해서 달걀과 우유도 안 먹고, 풀만 먹는다. 학창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이 친구는 우연한 경험을 계기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열성적인 동물권리운동가도 아니고 적극적인 환경보호론자도 아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채식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를 실천한다.

 채식만 하면 뭐 먹을게 있냐고 늘 묻게 된다. 그러면 자칭 미식가라면서 채식 음식 중에도 맛있는 것이 많다고 했다. 직장때문에 홍콩에 거주하며 미국에 왔다갔다하면서 사는 그 친구는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채식이 제일 불편한 나라로 한국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꽤 오랫 동안 불교 국가였는데도 왜 채식주의자를 존중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한국에 나와서 가끔 식당에 가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기 일수다. "저는 김치볶음밥을 주시는데요, 김치볶음밥에 계란도 고기도 넣지 마시구요, 그냥 김치하고 채소만 식용유에 볶아 주세요."  이런 식의 주문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지 않겠는가? 요즈음에는 그래도 사찰 음식을 하는 괜찮은 채식 음식점을 찾을 수 있지만, 십 여 년 전만 해도 식당 찾아 들어가는 것이 곤욕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나와 다른 타인'을 보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항상 '집단 속에서 튀지 않게' 생활해야 하고, 남과 다른 자신의 모습은 '적당히 감추고' 살아야 미덕이라고 여긴다. 아마도 오랜 농경 생활을 하며 형성된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탓이리라... 그런 탓에 내 집단에 들어온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넘치지만, 막상 타인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 직장은 '조직 생활의 룰'을 들먹이고, 학교는 '단체 생활의 규칙'을 강조한다. 물론 집단의 규칙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취향과 신념, 가치까지 매몰시켜서는 안 된다. 취향이 독특한 것이 범죄는 아니지 않은가?

 그 친구에게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이제는 한국에도 괜찮은 채식주의 식당 꽤 생겼다면서 말 끝에 "나도 채식주의자 흉내 좀 내 볼까봐" 그랬더니 "직장 생활 편하게 하려면 관둬라. 정 그러면 플렉시테리언 정도로 살든가... 난 한국에서 사는게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