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교에 오래 근무하다 여학교에 처음 왔을 때 낯선 풍경들이 종종 실소하게 했다. 점심 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손을 잡고 식당으로 뛰어가고, 화장실에도 단짝과 팔짱 끼고 간다. 책상 위에 놓인 필기구들은 거의 문방구 수준으로 다양하고, 책이나 노트는 색색깔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필기가 되어 있다. 그리고 늘 손 닿는 곳에는 자기 얼굴을 확인하기 위한 거울과 피부 관리를 위한 로션이 비치되어 있다. 다이어리에는 앙증맞은 스티커들이 빼곡하고 빈틈없이 학습 계획과 사생활이 메모되어 있다. 수업 시간에 보이는 표정만으로는 성적을 가늠하기 힘들다.
남학교에서는 손잡고 다니는 녀석들을 본 적이 없으며, 밥은 절대 혼자 먼저 뛰어가서 먹어야 하고, 화장실에 같이 갈 때에는 반드시 뚜렷한 목적(?)이 있다. 필통 따위를 챙겼다가는 '미스 홍' 같은 별명을 얻기 십상이고 곧 공공의 필통이 되어 모든 펜들은 이별하게 된다. 때문에 그저 펜 두 자루 교복 주머니에 꽂고 다니면 족하다. 다이어리? 필기도 귀찮은데 다이어리라니? 그런 짓을 할 시간이면 축구를 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또한 남학생은 수업 시간에 보이는 표정이 전부다. 살아 있는 표정은 성적, 성격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 준다.
남학생과 여학생 중 누가 더 가르치기 편한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육체적으로는 남학교가 힘들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여학교가 힘들다. 남학생들은 일단 수업 시간에 완벽하게 장악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런데 그 장악에는 매우 많은 기가 소모된다. 비교적 수업을 수월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학교에 와서 수업을 해 보니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똑같은 수업을 하는데도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반면 여학생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해서 사소하게 던진 농담 한 마디에도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여 되씹는다. 예를 들어 남학생은 학년 초에 면담을 해도 하면 하나보다, 안 하면 안 하나보다 그걸로 끝이고, 대부분의 답변은 예 혹은 아니오로 끝난다. 여학생은 언제 하나, 누구는 길게 했는데 왜 누구는 짧게 했을까, 왜 누구는 먼저 했을까를 궁금해하며, 답변은 교사에 대한 호감도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교사 문화도 여학교 문화와 남학교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교사의 남녀 성비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근무하는 학교의 환경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학교의 남교사는 남학교의 남교사와는 확실히 다르고, 마찬가지로 남학교의 여교사와 여학교의 여교사도 다르다. 지나치게 여성성이 강한 사람 - 타인은 별로 관심도 없는 자신의 사생활 읊어대며 무엇이든 다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 관계지향적 유형 - 도 피곤하고,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남성성이 강한 사람 - 위계 서열 중시하여 형님 아우 의리 강조하면서 조직을 움직이고 싶어하는 권력지향적 유형 - 도 피곤하다. 그런데 확실히 전자는 여학교에 후자는 남학교에 많은 것 같다. 문득 여성이나 남성이나 지나친 여성성, 남성성보다는 양성이 적당이 믹스된 듯한 인성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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