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제발 무대에서 춤추게 해 주세요

사회선생 2019. 10. 16. 08:53

진풍경이다. 학생들이 서로 무대에 서겠다고 난리이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각 반 장기자랑 대표를 뽑아 알려달라고 담임들에게 통보가 왔다. 바로 우리반 반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반 대표로 장기자랑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 있으면 내게 알려달라고.

내가 받은 답은 놀라웠다. 총 6팀으로 참가자는 학급 인원인 25명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였다. 한 명이 두 팀에 걸쳐 나가겠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무조건 무대에는 한번만 설 수 있다고 해도 절반 가까운 수가 무대에 오르겠다고 신청했다. 

담임으로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이게 우리 반의 특수성인지, 2학년의 일반적인 현상인지 궁금해서 다른 반은 어떤가 물어봤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가보다. 장기 자랑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참여 희망자가 폭주하다보니 조정이 필요했다. 각 반 대표를 한 팀으로 제한하기로 했다고  종례 시간에 들어가서 이야기해 줬다. 불만이 폭주한다. "왜 다른 반 친구들과 참여하면 안 되나요? 꼭 반 대표여야 하나요?" "오래전부터 연습했기 때문에 한 팀으로 못 합쳐요. 제발 다른 팀으로 나가게 해 주세요." "저 팀은 저 없이 춤 안 돼요. 저는 두 팀에 모두 나가야 하는데 왜 한 팀만 된다고 하시는거에요? 안 돼요."

담임을 20년 이상 해 봤지만, 이렇게 무대 열정을 불태운 세대는 일찍이 없었다. 과거를 회상해보니, 대부분 한 반에 소위 괴짜 혹은 노는 아이들 그룹이 한 팀 정도는 있었고, 의례 그들이 반대표를 맡아 끼를 발산했다. 더 나오라고 해도 나오는 아이도 없었고, 그나마 그런 아이들이 없는 반은 아주 난감해 했다. 아이들이 누구 노래 잘 한다고 추천해서 무대로 불러내면 마지 못해, 정말 너무 부끄러운데, 할 수 없이 끌려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세대의 기질이 바뀌었다. 잘하든 못하든 그냥 무대에 서고 싶다. 취미는 친구들과 모여서 춤추기였나보다. 음악이 나오면 그냥 몸이 반응한다. 우리 세대는 음악이 나오면 입으로 흥얼거리는데, 얘들은 몸이 출렁인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즐기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 아니 되고는 싶은데 되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포기한 것일수도?! - 특별히 끼가 많은 것도 아니고, 아이들 표현대로 '관종'도 아니지만 음악이 나오면 춤이 나오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며 희열(?)을 느끼고 싶은거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정서이다. 이 정도인줄은 늘 까이에서 학생들을 보면서도 미처 몰랐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아이들에게 예전 그대로의 방식대로 학습을 시키고 있나보다. 무대에 오르겠다고 아우성 치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수업시간에 지루해서 몸부림치다가 잠드는 학생들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몸이 출렁이는 아이들에게 꼼짝마 시켜놓고 머리만 굴리라고 하니 금방 정신줄이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는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