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 아니 소규모 테마여행에 다녀왔다. 명칭도 새롭다. 소규모 테마 여행이라... 오래 전, 이게 무슨 수용소지 여행 숙소인가 싶었던 곳에 학생들을 데리고 머물던 때가 있었다. 한 방에 7~8명씩 자며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고, 밥은 무슨 급식소에서 배식 주듯이 열악한 반찬에 밥을 먹어야 했던 여행 아닌 여행. 학생들은 호시탐탐 숙소 밖으로 탈출(?)하고 싶어했고, 숙소 내에서는 술 마시고 사고 칠까봐 교사들이 밤에 잠 못 자고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그런 기억들때문에 나는 수학여행을 가기 전부터 피로감이 엄습했다.그런데 이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거의 20년 만에 수학여행을 갔나보다. 담임을 20년 이상 했지만 이상하게 2학년 담임은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수학여행도 아주 오래 전의 기억밖에 없다. 그런데 격세지감이다. 숙소는 분명히 '호텔'이었고, 학생들은 2인 1실 아니면 3인 1실로 방을 쓴다. 와이파이도 되고, 웬만한 용품들 모두 구비돼 있고, 식사도 뷔페식으로 별 세개짜리 유럽 여행에서 머물렀던 웬만한 호텔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학생들의 취향이 반영되어 흔히 제주도에 가면 필수 코스였던 폭포와 동굴 같은 곳은 모두 빼고, 사진 찍기 좋은 테마 공원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게다가 여행사에거 고용한 안전요원들이 각 버스마다 배치돼 있어서 학생들의 인솔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100명도 안 되는 인원들을 세 대의 버스에 태우고 이동하는 건 할 만 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 학생들의 특징인지, 요즘 학생들의 특징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선생님들 눈을 속여가며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숙소에서 치킨 시켜 먹고 밤새 TV 드라마나 보면서 수다 떨다가 잠을 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수학여행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단체 여행이 내포할 수밖에 없는 위험성이 상존해 있다. 둘째, 말이 수학이지, 사실 수학의 의미보다는 놀이의 의미가 더 크다. 그런 이유로 굳이 학교에서 대규모로 며칠씩 학생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여행은 관광 산업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교육의 측면에서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굳이 해야 한다면 생물시간에 탐사, 역사나 지리 시간에 답사, 사회 시간에 탐방 정도를 필요에 따라 할 수 있으면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학교라는 감옥(?)을 떠나서 친구들과 며칠 동안 함께 먹고 함께 잘 수 있다는 거 아닐까? 화장하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친구들과 함께 '자고' 함께 '사진을 찍고' '함께 놀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수학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여행이라면 지자체나 사설 단체에서 학생과 학모들의 희망에 따라 방학 중에 해야 할 일인듯 하다. 친구가 없는 아이, 싫은 아이와 한 방을 쓰게 된 아이, 한 방을 사용하다가 싸워서 교사에게 내려와 울며 불며 자신은 방을 따로 잡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매 해 본다. 그걸 교육적 차원으로 접근하도록 두는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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