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고 사람 좋기로는 학교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운 캐릭터의 과학부장이 학부모들에게 문자 테러를 당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과학중점학교이다 보니 과학과에 행사가 많다. 얼마 전 서울시 차원의 과학탐구대회에 나간 우리 학교 학생 몇 명이 금상을 받았나보다. 과학부장은 너무 기쁜 나머지 이를 함께 축하해 주자는 생각에 모든 학부모와 학생과 교직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것도 학교 번호가 아닌 개인 번호로 보내는 실수까지 했다.
나는 그 당시 문자를 받고, 과학부장이 잘못 보냈다고만 생각했다. 과학과 교사들에게만 알릴 내용을 전교사에게 잘못 전달한 것으로만 여겼다. 그래서 '문자 잘못 보내셨어요'라고 답문자를 보낼까 말까 하다가 그만 뒀다. 그게 의도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후에는 '이 양반 너무 오버했구먼' 그러고 말았다.
그러데 학부모들은 달랐다. 최근 과학부장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그 때 어떤 후폭풍을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듣게 됐는데, 아무리 실수였다고 쳐도 그 반응은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한 두 명의 학부모가 아니었다. 수 십 명의 학부모가 답문자를 보내왔는데 - 교사인줄 알면서도 - 니가 제정신이냐, 이거 왜 보내냐, 미친 놈, 미친 새끼 등등 반말에 쌍욕을 하고, 아주 젊잖은 답문자는 '이런 문자 받고 싶지 않습니다. 보내지 마십시오.'였다. 분이 풀리지 않는지 직접 학교로 전화해서 통화하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일주일 이상 그런 답문자와 전화에 시달렸다고 하니 자신도 멘탈이 붕괴될 지경이었다고.... 과학부장은 함께 기뻐해 주시면 안 되냐고, 학교라는 공동체를 우리 학교로 생각해 주시면 안 되냐고 교과서 같은 말로 호소했다가 '그건 네 말이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라는 말을 들었단다. 그것도 반말로.... 듣고 보는 내내 씁쓸했다.
학부모는 학교를 대학보내주기 위한 서비스 기관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원하는대로 원하는 것만 해 주길 바란다.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건 월권으로 여긴다. 게다가 치열한 경쟁은 엄청난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만들어 냈다. 학생들 역시 그런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부모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학생은 그보다 훨씬 더할 가능성이 크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말에 의해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열받아가며 공부하고 있다. 상위권만 챙긴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늘 공부 못하고, 잘 하는 것이 없어서 소외받는다고 여긴다. 대학만능주의, 대학입시가 만든 병폐이다. 모두 실패자이고, 패배자이고, 누군가의 배경이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래서 누군가 상을 받았다는 것 조차 무관심해지기조차 힘든 열폭하게 하는 일인가보다. 우리네 학생들이 이런 마음으로 학교 생활을 하고, 이런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 우리가 뭘 잘못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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