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무력감과 좌절감. 동물과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이 세 가지 감정을 필연적으로 느끼게 된다. 인간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 그네들과의 감정이입으로 슬픔이 느껴지고, 그리고 그런 사실을 마주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감이 짓누르고, 과연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까 회의감과 함께 좌절감이 엄습한다. 당장 집 주변을 산책하면서 목격하는 행색이 초라한 떠돌이개나 밥을 기다리는 길고양이를 보면서도, 한 쪽 다리가 실에 감겨 불구가 된 비둘기를 보면서도 난 슬픔, 무력감, 좌절감을 느낀다.
그래서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권 실현에 매우 관심이 많지만, 나는 고백컨대 언제부터인가 동물의 왕국같은 다큐멘터리 조차 보지 못한다. 그건 그들의 양육강식의 세계가 보여주는 슬픔때문이다. 자연의 순리 속에는 자식 잃은 모성애도 있고, 부상으로 힘겨워하는 고통도 있고, 가족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도 있는데 그것이 순리라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도 정말 보기 힘들다. 빨대가 코에 꽂혀있는 거북이를 보면서 역시 슬픔과 무력감과 좌절감이 들기 때문이다. 도시의 개나 고양이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더욱 그렇다. 최근 '동물, 원'이라는 영화를 개봉했는데 그리고 카라에서 '동물의 권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했는데, 나는 토리의 병을 핑계 삼아 가지 못핸다. 차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디즈니 영화도 싫어한다. 그 동물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 연기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냥 동물 학대의 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이 동물을 힘들게 했을까? 인간 배우야 이를 통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겠지만 동물은 그럴 리도 없고, 원하지도 않을텐데....
아무튼 그런 비겁한 마음으로 차마 직면하지 못하고 곁눈질로 보면서 그저 소극적으로 기부나 하고 동네 고양이 밥이나 챙기고 그렇게 사는데... 책공장더불어의 대표가 쓴 글이 눈에 들어온다. 동물권과 환경에 관심이 남다른 그녀는 다큐멘터리 감독 크리스 조던의 말을 빌어 '슬픔을 느끼고, 기꺼이 고통과 아픔을 마주하고, 다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면서 절망을 넘어보려 한다'고 했다. 그 말뜻이 무엇인지 나같은 사람은 안다. 그녀는 크리스 조던이 알바트로스에 관한 다큐를 찍으며, '슬픔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알려고 하고, 이 세계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고, 거기에 힘을 더 하는 길은 슬픔을 마주하는 용기와 좌절을 거부하는 희망뿐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인간이 사용한 플라스틱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알바트로스를 보면서 크리스 조던은 슬픔과 괴로움을 느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직시하며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모든 이들에게 슬픔을 마주하도록 그리고 우리의 행태를 바꾸도록 요구하고 있다.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그의 몸짓이다. 우리는, 나는 어떤 몸짓을 하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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