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

고양이가 도망가지 않는 이유

사회선생 2019. 12. 17. 22:37

해리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 막고 선다. 해리가 한 덩치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해리를 보면 피한다. 일단 체격에서 자신이 약한 줄 알면, 동물들은 위험한 상황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 본능이다. 삼십육계 줄행랑. 이건 매우 합리적인 전략이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아무리 봐도 해리랑 맞장 뜨기에 작은 체격인데 자꾸 해리 약을 올린다. 아니나 다를까, 근처에 자신의 새끼들이 있었던게다. 해리가 그 새끼들을 보고 달려가서 해꼬지 하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을 표적으로 삼으라며 유인하는 에미 고양이였다. 동물의 세계에서조차 암컷은 불쌍하구나. 찡했다. 자신의 새끼들이 어릴 때에는 대부분의 동물들조차 물불 안 가리고 새끼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멧돼지도 대부분은 개나 사람을 만나면 도망간다. 그런데 새끼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에미 맷돼지는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이기지 못할 싸움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일단 자기 새끼부터 지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본능이라고 폄하하기에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희생을 본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도덕적으로 느껴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희생을 - 본능이라도 - 본능이라고 폄하하진 않는다.

그렇게 보니 동물의 세계에서도 암컷은 수컷보다 훨씬 슬픔을 많이 겪으며 사는 것 같다. 야생의 세계에서 암컷들은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며 천적들로부터 지켜내고, 사냥 기술을 가르친 후, 독립 시킨다. 모든 새끼들이 그렇게 안전하게 독립하는 건 아니다. 밀림의 왕이라는 사자도 새끼의 생존율은 50%가 되지 않는다니, 에미들은 어린 새끼의 죽음을 목격하는 슬픔을 겪어야 한다.

축사에서 키우는 소나 돼지도 암컷들은 새끼를 낳자마자 제대로 젖도 물리지 못한 채 자신의 품에서 떠나 보내는 슬픔을 겪어야 하고 - 실제로 에미들은 새끼들과 분리하거나 새끼들이 고통을 겪는 걸 목격하면 매우 불안하고 슬픈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새끼 돼지가 거세 당하는 것을 본 암컷 돼지는 자신이 자지러지는 것처럼 울어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단언컨대, 동물도 슬픔을 느낀다. 그런데 암컷들은 에미로서의 어려움, 슬픔, 죽음까지도 경험한다. 수컷과는 달리 자신의 생존 혹은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새끼를 위해서... 에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