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시험을 못 보는 백만 가지 이유

사회선생 2019. 7. 9. 14:34

교육청에서 우리 학교의 기말고사 시험이 불공정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며 학교로 연락이 왔단다. 무슨 말인가 깜짝 놀라서 들어보니 기가 막히다. 자신의 자리는 맨 뒷자리라 앞에 앉은 아이들보다 시험지를 늦게 받는다고. 그래서 시험지를 몇 조 덜 볼 수밖에 없다고 불공평하다고 했단다. 

많으면 6명, 적으면 5명이 한 줄로 앉아서 시험을 본다. 시험지를 뒤로 전달하는 데에 빠르면 3초 쯤, 늦으면 5초쯤 걸릴거다. 맨 앞의 아이는 시험지를 뒤로 넘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맨 뒤의 아이는 그런 번거로움이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맨 뒤에 앉아서 자신이 맨 앞에 앉은 아이보다 3-5 정도 시험을 늦게 보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며 이의 시정을 요구했단다. 아이도 아이지만, 그 아이의 말을 듣고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도 참 안스럽다. 엄청난 피해 의식을 가지고 불행하게 세상을 살겠구나 하는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시험을 못 본 이유를 찾고 싶은거다. 자신에게 투영하지 않고, 어떻게든 밖에서 타인을 통해 이유를 찾고 싶은거다. 그런데 별로 마땅한게 없으니 맨 뒷 자리여서 시험을 - 더 잘 볼 수 있었는데 - 못 봤다는 결론을 내렸나보다. 만일 맨 앞에 앉았다면, 시험지 넘겨주는 일을 하느라 산만해서 집중하기 힘들어 시험을 못 봤다고 할 거고,  자신의 교실은 4층이라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서 시험을 봤기 때문에 1층에 있는 애들보다 불리하다고 했을 거고, 자신의 반에 마음에 들지 않는 애가 옆에 앉아 있어서 시험을 보기 힘들었다고 했을 거고, 감독 선생님의 목소리가 거슬려서 시험을 못 봤다고 민원을 넣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없지 않단다.)

아무리 입시와 시험 지옥에 빠져서 사는 불쌍한 영혼들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고 있자면 참 씁쓸하다. 그 학생과 학부모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공평함일까? 정의일까? 용인될 수밖에 없는 - 하지만 유의미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몇 초- 시험 운영을 문제로 삼는 것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다름이 아닌가 싶다. 그냥 시험을 못 본 이유를 찾고 싶은게다. 극단적 스트레스로 내가 아닌 다른 것에서 이유를 찾고 싶은거다. 그런데 그렇게 찾기 시작하면 이유는 백만가지도 넘는다. 관용할 만한 것의 범위 내에서는 이를 수용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도 정의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학생과 학부모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럼 무엇보다 자신들의 삶이 조금은 덜 팍팍하고 나아질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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