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시험을 위한 시험을 봐야 하는...

사회선생 2019. 7. 9. 16:02

앞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수능은 한계에 봉착했다. 시험을 위한 시험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교과서만 공부하면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다가는 좋은 대학 못 간다.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코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다.

수능 검토할 때의 기억이 난다. 법정이나 사문은 항상 가르쳤기 때문에 난 거의 문제 풀이 귀신이 돼 있어서 그냥 발문만 보고도 문제의 답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는 선택자가 없어서 오랫 동안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풀어야' 했다. 30분에 20문제가 정말 빠듯했다. 그래도 전공자인데 아무리 오랫 동안 경제 수업을 쉬었다고 해도 그렇지 나에게 이렇게 빡빡하면 학생들에게는 오죽할까 싶어 담당자에게 말했다. "이거 30분 안에 풀기에 너무 벅찬데, 학생들이 풀 수 있어요? 너무 어려워요." 담당자는 자신있게 말했다. "문제 풀이 머신들이 많아서 그래도 만점 받는 아이들이 일등급 받아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수업 시간에, 교육 과정에 따라 가르친 내용 대로 수능은 나오지 않는다. 사회문화의 경우에 교과서에서는 표 분석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치지 않았는데, 표 분석하는 문제로 변별을 하고, 이리 저리 요상하게 꼬아서 함정에 빠뜨리는 문제를 많이 출제한다. 나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출제할 때에 그렇게 낸다. 변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주관식 문제는 완전하게 아는 사람과 대충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구분하는 데에 매우 좋아서 나는 감점 제도까지 두고 채점을 한다. 대충 아는 사람들을 변별하여 점수를 서열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학교 시험 문제 때문에 우는 아이들을 보니 문득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다. 1등급이 없으면 안 된다고 정답률 낮은 문제들을 이리저리 꼬아서 냈는데, 내가 봐도 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그냥 기본적인, 정말 교과서의 기본적인 내용만 알면 되지, 그리고 기본 점수만 넘기면 되지 왜 이렇게 1등급이 나오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평가는 중요하다. 학생이나 교사가 성취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대학에서 교육학을 배우며 들었던 평가의 목적은 잊어버린지 오래다.  우리네 고등학교에서 평가는 서열화이자 대학에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교사들은 어떻게든 등급이 완벽하게 분포되도록 해 줘야 한다. 그래야 대학에 갈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참 많은 문제를 만들었고, 봤지만 문득 이게 정말 잘 하는 짓인가 싶다. 내가 만든 문제들이 정말 좋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 쓰지 못했다고, 문장의 형식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틀린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감점을 하며 채점을 하고 있다. 만점 40점에 한 명도 만점자가 없다. 이건 내가 잘 못 가르친 것 아닌가? 한 학생이 법정을 못 봤다며 울고 간다. 출제자의 의도에 딱 걸린 학생이다. 그런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