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상치 과목 교사

사회선생 2019. 7. 10. 08:48

중학교 시절의 지리 선생님이 기억난다. 위도와 경도를 설명하는데, 위에서 아래로 그어진 선이 위도라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전전긍긍하다가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위도는 가로선 아니에요? "  선생님은 그게 틀린거라고 내게 답했고,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아이들에게 위도는 가로선이라고 정정해줬다. 그 기억이 내게 선명히 남아있다. 그리고 교사가 된 이후에 나는 확신했다. 분명히 지리 전공자가 아닌 선생님이었고, 공부도 안 하고 들어와서 대충 수업을 했던거라고. 

고등학교 시절 물리 선생님도 기억난다. 수학도 웬만한 수학선생님보다 훨씬 잘 가르쳐서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반을 매우 부러워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온 선생님이었는데  그 때의 서울대 물리학과는 서울 의대보다 커트라인이 높았다. 학벌주의에 반대하면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수학을 매우 잘 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더 잘 가르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를 잘 한다고 잘 가르치진 않는다. 그런데 자신이 잘 알면 잘 가르칠 가능성이 높다. ) 어쨌든 그 경험은 모든 상치 과목 교사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긴 했지만, 이건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당시의 서울대 물리학과였다는 변수가 있으므로.... 

선택제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면서 상치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당장 우리 학교에서도 영어과와 국어과 교사가 사회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과 교사들이 사회를 가르치는 정도는 사회과로 뭉뚱그려 상치로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분명히 상치이다. 상치 교사들이 많아지는 건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의 입장에서도 전공자는 비전공자들까치 가르쳐가며 수업을 해야 하는데, 이게 매우 민감하고 예민할 뿐더러 힘든 일이다. 교사가 학생들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상치라는 이유로 함께 수업을 하면서 평가도 전공자가 하고 심지어 상치 과목 교사까지 가르쳐 가면서 일해야 하는 것은 문제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냥 내가 더 하면 되는 차원이 아니다. 전공과목 선생님들과 논의되는 내용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본 개념을 숙지시키는 일부터 해야 하는데, 왜 같은 교사끼리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학생들은 어떻겠는가? 전문성이 없는 교사에게 제대로 배울 기회를 박탁당하는 것이 아닌가? 관리자는 상치 과목 교사에게 공부해서 가르치면 된다고 하지만, 수 년 전공 공부를 하고, 여러 해 동안 특정 과목의 교재 연구를 한 것을 한 두 달 공부한다고 해결된다면 교사 못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선택제 교과가 되면서 앞으로 상치가 많아진다고 상치 과목 안 하면 짤릴 수도 있다고 아주 과격한 표현을 하며 학교에서는 협박(?)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상치 과목이라도 할 수밖에 없도록 많은 교사들이 내몰리고 있다. 교사들에게만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아니 초등학생들도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느냐에 따라 특정 과목에 대한 이해도와 선호도 등이 달라진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자꾸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미봉책만으로 교육을 운영하다가는 본질을 놓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