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어가 동일하다면 이 제목은 매우 엽기적이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어떤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한 황윤 감독의 신간 제목이다. 아직 읽어 보진 않았지만 그녀의 고민이 무엇인지 제목만 봐도 느껴진다. 인터뷰 내용을 보니 공장식 축산 방식에 이의 제기를 하고 싶었던 듯 하다. 깊이 공감한다.
봉준호감독도 어느 인터뷰에서 옥자를 찍기 위해 도살장 취재를 다녀온 후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정서적으로는 같은 맥락의 글일 것 같다. '공장식 축산'과 '도살장'은 원시 사회에서 육식을 위해 행해졌던 사냥보다 훨씬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인간들만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모르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거 같다.
나도 가끔 고민이 된다. 생명 윤리 교육을 위해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디까지 알려주는 것이 옳은지 그 기준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황윤감독도 차마 자신의 아이에게 공장식 축산 현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했다. 만일 우리들이 인간의 욕망을 위해 자행하는 폭력의 현장을, 악취와 피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을 들여다 본다면 우리는 육식을 하는 데에 주저하리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걸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명목상으로는 정서적으로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것이 속 편한 우리네 경제 구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필요 이상의 욕구를 만들어내고, 수요 이상을 생산하고, 생산품이 되기 위해 도살되는 동물들을 통해 우리 경제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만 되면 홈쇼핑에서 천연 모피와 구스 다운, 덕 다운을 내세우며 겨울 옷을 팔아댄다. '천연'임을 강조하는 그 말 뒤에 인간의 폭력과 동물들의 고통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그런 광고를 보는 것조차 불편해진다. 황윤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나 역시 늘 '잡식 동물의 딜레마'에 빠져서 산다. 먹고 입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도덕적 죄의식을 느끼면서 사는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욕해도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자고 외치는 황윤감독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결국 그런 길이 조금씩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876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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