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에 다니는 친구가 이베리코 돼지고기 구입을 위해 스페인 거래처로 출장을 갔나보다. 이베리코 돼지는 이베리코 반도의 데헤사라고 불리는 목초지에서 도토리와 올리브, 유채꽃, 허브 등을 먹고 자라는 돼지란다. 돼지고기 사러 간 친구는 어울리지 않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돼지들이 부럽더라. 너무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평화롭게 도토리 주워 먹으며 맘껏 뛰어다니는 녀석들' 이라고... 자연 속에서 토토리 먹으며 뛰노는 돼지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그들은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자연스러움, 조화로움, 평화로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 아닌가?)
난 그 문자에 갑자기 훅 슬퍼졌다. 그렇게 살아도 결국 도살장에서 살처분된다는 것도 슬프고, 그런 삶조차 누리지 못한 채 옴짝달싹 움직이기조차 힘든 우리 속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우리네 돼지 사육장 모습이 떠올라서 슬프고, 그런걸 알고 있음에도 돼지고기를 끊지 않는 나도 슬프고.... 그냥 갑자기 다 슬펐다.
하필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책공장더불어의 신간 '대단한 돼지 에스더'를 주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는데, 캐나다의 두 남자가 미니돼지인줄 알고 키우기 시작한 돼지가 사실 300kg까지 자라는 소위 농장용 돼지였고,그 사실이 두 남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이야기란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예상되는 스토리이다. 돼지라도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 분명히 서로 교감하며 사랑하는 가족이 될테니까... 그런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이베리코 돼지의 삶과 죽음이 그려졌으니...
그래도 이베리코 돼지들은 자유롭게 살다가 죽을 수 있으니 그거라도 고마워해야겠지. 동물복지가 인간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걸로 일단은 동물보호운동에서 접근해야 하나보다.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그렇게 맛이 좋은 이유는 분명히 돼지들이 행복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 듯 하니 말이다.'
'좋은 육질과 풍미를 위해서 소나 돼지도 행복하게 살게 해야 한다' 보다는 '소나 돼지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쾌고감수 능력을 가진 동물이다'로 접근하고 싶지만, 후자로 접근하면 저항이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베리코 돼지 고기를 먹어 보고 싶다는 마음은 1도 없지만, 그럼에도 돼지고기는 끊지 못하면서, 동물권과 동물복지를 이야기하는 '잡식 동물의 딜레마'를 나를 통해 보고 있다. 나약한 동물 인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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