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치는 수능 선택 과목이긴 하지만 선택자가 많지 않다. 전교에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방과 후 수업도 개설이 안 되고, 수업 역시 비교적 자유롭다. 사회문화 수업을 할 때와는 달리, 방과 후 수업을 안 해서 편하고, 수업 시간에 문제 풀이에 얽매여 주요 개념이 뭐고 정답과 오답을 골라내는 요령이 뭐다 이런 식의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또 다른 수업의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올해에는 작정하고 수업 방식을 바꿔 보기로 했다.
일단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들을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사실 그 이유가 크다. 과정 중심, 사고 중심의 협동학습을 시키고 싶다,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신장시키고 싶다는 건 후순위였다. 모둠이 생기면 잘 하는 아이도 있고, 못 하는 아이도 있고, 리더도 생기고, 따라가는 아이도 생긴다. 그 안에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논의하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낙오자 없이 그들이 의미있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며 배워가는 과정을 보고 싶었다.
첫 시간에는 두 가지 주제를 주었다. 정치의 의미와 정치와 일상 생활. 모둠별로 정치라고 했을 때에 떠오르는 개념이나 이미지들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개념을 바탕으로 정치의 개념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 보라고 했다. 문학적 표현도 좋고, 학술적 표현도 좋고 표현은 자유라고 열어두었다. 틀리면 어떤가? 정치학자도 아닌데. 단지 정치의 주요 속성을 잘 끌어들여서 의미를 부여하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물론 학술적인 정치의 개념은 내가 학생들의 표현을 끌어들여서 정리해 주어야 했다. 학생들의 머릿 속에 들어있던 개념들을 활용하여 네가 말한 것은 국가현상설 혹은 집단현상설 등에 해당한다며 확인시키면서 개념 정의를 해 주면 훨씬 쉽게 이해한다. 시간은 걸리지만 설명이 수월해진다. 학생들도 내가 일방적으로 정치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보다 더 오래 깊이 이해하고 기억할 거라고 믿고 싶다.
두번째 주제는 최근에 내가 했던 정치적 행위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그 행위를 활동지에 써 보라고 했다. 특정 행위가 정치적인 행위인지 아닌지 모호하다면 논의를 해서 그 결과를 발표해 달라고 했다. 학생들은 서명운동, 댓글달기, 신문읽기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계속 추가 질문을 하며 왜 그것이 정치적 행위냐고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우리의 사회 생활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정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재들도 많이 나왔다. 내가 강의식 수업을 하면 결코 드러날 수 없는 것들... 아무리 공부를 못 하는 학생이라도 매우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배운 넓은 의미의 정치와 좁은 의미의 정치를 확인하는 작업이 될 수 있었다.
주제를 잘 선정하고, 자료를 잘 제공하고, 활동지만 잘 만들고, 모둠만 잘 구성하면 더욱 좋은 수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생기부에 써 줄 꺼리들도 풍부해진다. 혼자 떠들고, 지필 평가로만 아는지 모르는지 판단하고, 잠깐 외웠다가 기억에서 사라지는 수업을 바꿔야 할 때가 된 듯 하다. 성취 수준이 높은 상위권 학생들을 하향 평준화시킨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네들에게는 수준 높은 읽을 꺼리들을 던져주고 수준 높은 발문을 통해 글쓰기를 시키거나 모둠을 이끌어가게 하면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방법은 많다. 내가 모를 뿐.... 학생들은 달라지고, 시대의 요구도 달라지는데 내가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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