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가 넘었다. 아이 문제로 상담하고 싶다는 학부모 문자가 왔다. 표현은 완곡하지만 내용인즉 아이 문제로 상담하고 싶으니 지금 자신에게 전화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답문자를 하지 않았고, 당연히 전화도 걸지 않았다. 마음같아서는 이렇게 답문을 보내고 싶었다. '죄송하지만 근무 시간 중에 교무실로 연락주십시오. 내일 오전 중에 시간표를 보고 통화 가능한 시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답문자를 보내느니 안 보내는 편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에 보내지 않았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은 차치하고, 나는 담임을 하면서 한 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서로 예절을 지킨거라고 믿는다. 정말 급한 일로 문의할 게 있을 때에는 한밤중에도 통화한 경우가 있지만 손으로 꼽는다. 그런데 이제 학부모가 밤에 핸드폰으로 전화해 진학 상담하자고 한다. 어떤 내용의 상담인지 짐작하고 있다. 일주일 전에 학생과 직업반 문제로 면담을 했기 때문에 관련된 내용을 묻고 싶었나보다. 그 학부모는 서로 편한 시간에 이야기 하자는 것 같은데, 밤 9시 30분이 학부모에게는 편한 시간일지 모르지만 교사에게는 편한 시간이 아니다. 교사에게는 학부모 상담이 힘든 업무이기 때문이다. 안 하겠다는게 아니라 근무 시간에 하겠다는거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욕할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에게 성직자 같은 덕목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교사는 학생을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달려가 모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그래서 교사라면, 학생이 저지르는 범죄- 교사에게 하는 욕설, 폭력, 성희롱 등-를 성장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성장통쯤으로 보고 용서해야 하며, 학교로 와서 행패 부리는 학부모를 그냥 이해하고 넘겨야 한다. 교사가 그런 패악을 저지른 학생과 학부모를 고소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많이 보았다.
어차피 성직자는 되기 어렵다는 것을 피차 안다. 그럼 서로 직업인으로서 존중하고, 직업 윤리에 반하는 짓을 한게 아니라면 서로 직장 생활 하는 사람들끼리 이해하며 예의를 지켜주면 좋겠는데 왜 자꾸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하긴 교직 사회 뿐이랴. 자기가 돈 낸다고 갑질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참고로, 성직자인 신부님이나 목사님도 신도의 콜에 24시간 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도가 교회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경찰에 신고한다. 성전에서 행해진 일이므로 신의 사랑으로 용서한다고 하는 목사님이나 신부님 없다.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무실 청소하세요 (0) | 2018.03.14 |
---|---|
수능 과목이 아니어서 좋은 점 (0) | 2018.03.13 |
출석부를 버리다니 (0) | 2018.03.09 |
담임이 이상해 (0) | 2018.03.08 |
보직교사와 담임교사 (0) | 2018.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