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고등학생 시절, 학교에는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학생주임, 교무주임 선생님 등이 있었다. 원로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소위 보직교사 혹은 간부교사라고 하는 교사들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학생주임 선생님은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해서 기억나고, 교무주임선생님은 늘 바빠서 수업 중에 나가거나 자습을 주는 일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기억난다. 그리고 학년주임선생님이 있었는데 우리의 기억 속에는 그냥 연세가 좀 있는 1반 담임선생님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서너명의 주임선생님과 학년주임선생님이 있었을 뿐이다. 주임선생님에게 어느 선생님도 주임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학생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내가 교직 생활을 시작하던 1990년대 초반, 우리 학교에는 주임이 아니라 부장이라는 직급의 교사가 있고, 그 아래에 주임이 있었다. 뭣도 모르던 시절 나는 선생님이 더 좋은 호칭인줄 알고 그렇게 불렀다가 어느 선배 교사에게 부장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훈계를 들었다. 서열이 엄격했는데, 교무부장, 연구부장, 학생부장이 있었고, 그 아래에 주임이 있고, 또 그 아래에 업무 분장에 따라 교사들이 소속돼 있었다. 나는 속으로 회사도 아닌데 왜 부장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직의 생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순진무구 초임교사였던 탓이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긴 있었다.)
지금은 모든 학교에서 업무가 부별로 구성되고, 모든 보직 교사의 명칭이 부장이다. 부장도 한 둘이 아니다. 이름도 생소한 부장들이 참 많다. 기업의 운영 방식이 학교로 도입된 때문이다. 기업의 운영 방식이 학교에 도입된 이유는 학교 간의 경쟁을 시키면서부터이다. 학교도 기업처럼 성과를 내라! 학교 간에 우수 학생 유치, 예산 유치, 명문대 진학 등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기업의 경영 방식이 학교에도 적용되었다. 그러면서 교무부에 속해 있던 전산업무 담당자를 정보부장으로, 연구부에 속해 있던 보충수업계를 방과후 부장으로 승격(?)시키며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맡겼고, 이전에는 없던 부서들도 생겼다. 학생 유치와 홍보를 위한 학교발전부, 상담보다는 진학에 관심이 많은 진로상담부 등이 신설되었다. 이는 학교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확실한 건 과거에 비해 부장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장교사가 많아지며 부장 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줄 경우 이는 상대적으로 평교사의 불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 권위적인 사립학교일수록 부장에 대한 인센티브가 많다.
보직 교사를 서로 안 하려고 해서 교장 교감이 힘들어한다는 기사를 봤다. 인센티브가 적은 공립학교 이야기일거다. 승진에 관심없는 사람의 경우 굳이 담임하면서 부장을 할 이유가 없다. 보직 교사 기피 현상을 없애려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보직 교사를 없애야 한다. 학교마다 기업 흉내 내며 업적 세우고, 학교 홍보하는 데에 열을 올리면서 보직같지 않은 보직이 많아졌다. 학교 운영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끼리 말한다. 보직 교사 많은건 교장이 편하기 위한거고, 각 부의 기획을 비담임 주려고 하는건 부장교사 편하게 하기 위한거라고... 그것때문에 평교사들만 담임하다가 빛도 이름도 없이 죽어난다고...어차피 교사의 삶을 선택한 사람은 빛도 이름에도 별 관심없는 사람들이지만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데에는 매우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학교의 보직교사는 교무, 생활지도부 정도면 족하다. 그들에게 지금처럼 수업 시수 혜택과 비담임 혜택 주고, 점수 많이 줘서 바로 교감, 교장할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그리고 다른 보직은 그냥 업무의 하나로 전문화해서 부의 아래에 두면 된다. 업무할래, 담임할래 물어보시길. 단언컨대 지금처럼 보직교사 못 구해서 일 못한다는 소리 나오지 않을테니...
학교는 학생을 위한 곳이어야 하고, 행정적 업무도 모두 학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업무가 많아져서 힘들다고 부장이다 기획이다 온갖 부서 만들어 내면서 업무 편하게 해 주려고 머리 쓰면서 왜 담임하기 힘들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지? 어차피 모두 힘들어졌다면 업무의 무게를 적절히 조절하여 담임할래, 업무할래 선택하게 해야 한다. 단, 그 선택이 고민되도록 만들어보라. 한 쪽으로 치우친 선택을 한다면 그건 분명히 한 쪽이 훨씬 힘든 일이기 때문이므로...
지금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더 큰 문제는 서로 담임 안 하겠다고 하는거지, 서로 보직 못 하겠다고 하는게 아니다. 물론 교장 입장에서는 보직 못 하겠다는게 더 큰 문제겠지만 - 일을 편히 하기 힘들테니 - 정말 더 큰 문제는 학생들 못 맡겠다는 담임 기피 현상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보직 교사를 조정하고 업무를 세분화하여 업무 전담 교사를 만드는 데에 있지 않을지.
학교의 중심은 수업과 담임이 되어야 하는데, 언제부터 보직과 업무가 중심이 됐는지, 왜 관리자나 사람들은 전자에는 관심이 없고, 후자에만 관심이 많은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인가? 대부분 중요한 것은 보이는 곳보다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걸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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