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말을 섞어 보지 않은 후배지만 옆 자리에 앉게 된 것이 나쁘지 않았다. 말이 많아서 시끄럽거나 감정의 기복이 있어서 호호호 거리다가 신경질을 내거나 유머랍시고 위 아래 구분없이 막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면 좋아하는 면이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기보다는 싫어하는 면이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보게 된다. 싫어하는 면만 없으면 동료로서 나쁘지 않고, 여기에 좋아하는 면까지 많으면 친구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그런데 1년을 보내고 난 후, 지금 그 후배와 친구하고 싶어졌다. 그 후배는 결코 수다스럽지 않다. 정서적으로 안정적이며,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 잘 알기 때문에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 동료들에게 살갑지는 않아도 결코 무례하게 구는 법이 없다. 학교의 뜻에 모른 것을 따르지는 않지만 자신의 수업을 함부로 여기지 않고, 학생들에게도 정도를 지킨다. 잘 하는 걸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고, 못 하는 걸 숨기거나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개인적인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 정의감이 있으며 현상을 보는 통찰력도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사실 옆에 앉는 것조차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현재 기분을 주변 사람들에게 생중계하고, 신경 곤두 세우고 타인들의 눈치를 살피거나 간을 보고, 누구에게나 반말 찍찍하며 멋대로 지껄이면서 솔직함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무례함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잘 하는게 있으면 이를 과시하고 싶어하고, 못하는 게 있으면 감추고 변명하는 데에 급급한 사람들이다. 정의감이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내로남불'이다. 그런 사람들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피곤하다.
어쨌든 그 후배는 싫어하는 면을 갖지 않은 것을 넘어 내가 좋아하는 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올해에도 담임을 하게 된다면 옆 자리에서 그 후배와 오랫 동안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 참 아쉽다. 그 후배는 1년 동안 고마웠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내가 더 의지하고 있었나보다. 이렇게 섭섭한 걸 보면... 또래들보다 훨씬 지적이고 생각이 깊어서 되려 내가 고민이 생기면 상담하고픈 후배였는데... 아주 많이 아쉽다. 이제 학년과 교무실이 달라져서 자주 보지는 못하겠지만, 부디 늘 건강하고 지금처럼 어떤 일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의연하고 강건하게 자신의 길을 꿋꿋이 잘 가기를 바랄 뿐이다.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도 관계에서도 상처받지 않고, 행운이 늘 함께 했으면 좋겠다. 꼭 말해주고 싶다. '그 동안 내가 더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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