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입시 제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갈팡질팡하다

사회선생 2018. 2. 7. 14:30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야기한다. 우리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 인성과 협동 능력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과거 암기 위주의 단순 사고력을 측정하는 획일화된 평가를 통해 학생을 서열화시키는 학교 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즐거운 곳, 소외되는 학생이 없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런데 대학 입시에서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인성과 협동 능력을 평가 요소로 삼겠다고 하면 다들 반대한다. 그걸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유감스럽게도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 인성과 협동 능력 등은 측정할 만한 과목별 지표도 없으려니와 양적 지표로 서열화하면 본질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그와 같은 능력은 측량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의 의도와 결과의 파악을 통해 의미를 분석해서 서술해 주는 것이 평가가 된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현재의 수능처럼 5지 선다형 객관식 시험으로 평가한 후 이 점수를 바탕으로 이미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에 점수 맞춰 가는 것이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믿는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이렇게 클 수 있을까? 모르긴해도 학생부 종합 전형이 처음 만들어질 때에는 학교 교육을 바꿔 보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듯 하다. 사실은 아닐 수도 있고!  

학생부 종합 전형이 처음 시행될 때에는 나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냥 대학에서 국영수 잘 하는 학생들 알아서 뽑아가면 될 거 아니냐고 했다. 어차피 공부 잘 하는 학생들 뽑으려면 여러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수능 잘 보는 순서대로 뽑으라고 했었다. 그래야 계층성도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계층성이 더 반영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강북에서는 서울대 정시 입학생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무얼 의미하겠는가?)

학생부 종합 전형이 시행된 이후, 교실 현장에서 학생부 종합 전형때문에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엇인가 해 보려고 학생들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읽는 수준일지언정) 주제 발표도 하고, (논리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은 미흡해도) 토론도 하고, (나에게 맞는 일이 뭘까) 관심 분야를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여기에서 교사가 조금만 자극하며 방향을 제시해주면 이전보다 훨씬 좋은 수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그런 수업은 온라인으로 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자신이 지식을 구성하고 함께 공유하고, 서로 잘못된 점을 찾아내면서 합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적어도 사회 수업 시간에는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수능 문제 풀이조차도 모둠을 정해서 서로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해 봤더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잘 했다. 교사가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평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가가 100점 만점에 백점은 아니어도 협동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형태로 협동 능력을 보여주었는지 정도는 관찰하고 평가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학생부 종합 전형이 수정되는 방향에서 입시 제도가 자리 잡는 것에 난 찬성할 수밖에 없다. 입시 제도의 초점이 학교 내 교실 수업으로 맞춰진다면 그리고 교실에서의 학생의 활동이나 태도 평가가 반영된다면 교사로서 나는 기꺼이 환영한다.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교사나 학생들 모두에게 의미있는 수업이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학교의 비교과 활동은 철저히 배제하고, 학교에서 개별 교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다양한 교과 활동만을 평가 요소로 삼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사교육이나 부모의 정보력이 개입할 여지도 현격히 줄어든다. 자기 소개서나 추천서도 없애고, 비교과 활동도 없애고, 교실 수업을 가지고 평가하겠다면 불공평할까? 학교의 내신과 교사의 학생 평가가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면 결코 신뢰할 수 없는, 교사의 횡포만 강해질까? 요즈음 같은 사회에? 난 이 시점을 계기로 우리의 교육이나 평가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로 정성 평가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성 평가 요소도 넣자는 것이지...  


사실... 사람들이 입시에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대학 서열화와 - 학과 서열화가 아니라 대학 서열화는 문제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학파는 없고 학벌만 살아 있는 대학 문화에서는 더더욱 문제이다. - 취업 및 임금의 차이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심지어 이를 자본주의의 필연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지 늘 의문이지만 이건 차치하고! 입시에서라도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으로 한 번 틀어보는 건 어떨지. 학교 붕괴와 교권 부재, 학생의 방종과 일탈과 같은 문제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발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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