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입시 설명회, 흥행에 실패하다

사회선생 2018. 3. 16. 21:06

오래 전 사회과 1정 연수에서 강사를 한 적이 있다. 담당 장학사가 방송 강의 경험이 많으니 그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나는 '순진하게' 교재를 어떻게 재구성해서 방송 강의용 원고를 만드는지, 강의 프로그램은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 제작되고 방송되는지 이야기했다. 그런데 반응이 싸했다. 늘 수업을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분위기에 민감한 편이라 확실히 이들이 흥미없어 한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강의 도중에 내가 깨달았다. 이게 왜 필요한가하고. 그들의 관심사도 아니고, 학교 현장에서 도움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심지어 상식이 될 만한 지식도 아닌데... 그야말로 흥행에 참패했다. 그 때의 트라우마로 나는 교사 대상 강의나 연수는 지금도 절대 사양한다.

어제 학교에서 고3 학부모 대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입시 설명회를 했다. 고3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는 현재 나의 아이에게 맞는 전형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시켜야 할까이다. 대략적으로라도 내신성적에 따라서 생기부의 스펙에 따라서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서 어떤 범위의 어떤 전형, 어떤 학교들을 공략해 봄직하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용하다. 그런데 강사는 우리나라 입시 제도의 개관을 이야기했다. 무엇이 있고, 어떻게 구성돼 있고, 무엇을 보고자 한다는... 학교 교사들에게는 입시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연수 내용이지만 학부모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유명하고 유능한 강사여도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오래 전 트라우마가 생각나며.... 학교에서는 매우 공을 들여 훌륭한 분을 모셔왔다고 해서 나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필요하고 좋은 정보를 많이 드릴 거라고 꼭 듣고 가라고 대거 참석시켰는데, 한 학생이 끝나고 나가면서 내게 말했다. "선생님, 연수 별로였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꼭 들어야 한대서 끝까지 앉아있었어요." 칭찬해 달라고 내게 한 말이었는데, 정말 미안하고 난감했다. 연수 대상자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하지 않으면 연수는 성공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으면 별볼일 없는 것처럼....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나요?   (0) 2018.03.26
용의복장지도   (0) 2018.03.20
교무실 청소하세요  (0) 2018.03.14
수능 과목이 아니어서 좋은 점  (0) 2018.03.13
밤 9시 30분에 온 학부모 문자   (0) 2018.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