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는 개인을 넘어 집안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사이기 때문에 관심 갖지 않는 사람이 없다. 좋은 대학 나오면 모든 사회적 희소 가치에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구조 탓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일단 가능하면 그 안으로 들어가 살고 봐야지.
그런데 그 대안이 학종 폐지, 정시 확대인 것 같다. 수능 점수가 객관적 지표이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조금 착시 효과가 있다.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공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서 너 가지가 있다.
첫째, 오지 선다형 문제가 갖는 한계가 있다. 학생의 교과 학습 능력이 오지 선다형 지필 고사의 성적순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학교에서의 경험을 보면, 사회문화 지필 고사에서 100점을 받은 학생보다 80점을 받은 학생이 분석력이나 비판력, 창의력이 더 뛰어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발표의 내용, 질문에 대한 답변 수준, 특정 개념을 설명하는 능력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60점 받는 학생이 꽤 고차원적 사고력을 갖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 내 경험으로 보자면 대략 80점 정도로 파악된다 - 를 받은 학생이라면 100점이 1등 99점이 2등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내 과목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정량 평가와 정성 평가가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5지 선다인 지필 고사인 수능은 절대 평가로 - 혹은 대학별로 지원 가능한 수능 점수를 커트라인 점수화해서 입학 자격을 주고 - 하고 이후에는 고등학교에서 보여준 학습 능력을 토대로 개별 대학에서 심층 면접 시험이나 논서술형 시험 정도의 고사를 통해 변별하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게 학습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긴다. 단, 학생이 수업 시간에 보여준 능력으로만 한정해서! (학교 활동, 대외 활동 모두 배제하고! 물론 교사가 힘들어지겠지만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은 학생들의 답안 찾는 훈련이 아니라 사고와 실천이 수반되는 배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둘째. 지역성의 문제를 배제하기 어렵다. 그나마 일반 인문고가 명문대에 접근 가능했던 것은 학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신 좋고, 성실하게 학교 생활 했다는 것만으로 수능 최저만 맞추면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일 정시로만 대학입시가 정해지면 명문대는 특목고와 강남의 8학군 학생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지금도 그런데 정시로만 대학간다면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이는 불공평하다.
셋째, 학교 교육이 수능 문제풀이 교육으로 전락하게 돼 공교육 정상화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이 오히려 후진하는 셈이다. 오지 선다형이라는 것이 아무리 고등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로 구성을 해도 - 우리나라의 수능 문제는 꽤 수준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문제 풀이 요령을 터득하면 훨씬 쉽게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연습을 많이 하면 요령이 생긴다. 오답을 빨리 구별해 내는 능력이 생긴다. 그런 능력을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배워야 하다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학종의 수정으로 가야 하고, 이를 계기로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평가의 문을 열어줄 수 있도록 학교의 수업과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는 공교육 정상화와 더불어 교사의 권위를 다시 세워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교사들마다 수준 차이 많이 나서 수용하기 힘들다고 학부모와 학생들은 싫어하고, 교사들은 힘들어진다고 싫어하려나? 그냥 컴퓨터가 오지선다형 답지 채점하는게 제일 편하니까... 물론 이런 현실도 고려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하는가에 맞춰 바꿔 나가야 하는게 아닌지.
http://blog.daum.net/teacher-note/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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