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끝까지 최선을 다 하라고?

사회선생 2017. 10. 24. 08:47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성적일람표가 나왔는데 점수가 가관이다. 거의 웬만한 과목의 반 평균이 20점~30점대이다. 다른 반도 비슷하다. 이유는 하나.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1학기 때에는 눈에 불을 켜고 겁 날 정도로 몰입해서 공부를 했지만 2학기 때에는 그럴 이유가 없다. 왜? 대입 내신 성적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수능 공부하는 것이 학생들 개개인에게는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교사가 '끝까지 최선을 다 하라'고 해 봤자 먹힐 리가 없다. "왜요? 난 기말고사 성적 필요 없는데요."

공교육 황폐화의 한 단면이다. 시험을 보는데 공부를 안 한다. 수업 시간에도 교사와 학생이 따로 논다. 자기 필요한 공부를 알아서 하는 학생, 그냥 자는 학생들이 혼재한다. 교사 혼자 수업하는 과목도 많고, 자습하라고 하는 과목도 많다. 선택 과목인 경우에는 학생들이 들을 필요가 없다고 거부하기 때문에 수업을 할 수가 없다. 정상적으로 학교 교육 과정이 운영되지 않는다. 강제로 하면 학생들은 반발한다. 내가 필요한 공부만 알아서 하겠다는데 학교에서, 교사가 왜 간섭이냐고.  

사실 이 문제는 입시 일정만 조정하면 끝나는데 교육부는 그럴 생각이 없나보다. 3학년 학사 일정을 앞당겨서 11월 초에 완료하고, 그 이후 수능일정을 잡고, 그리고 나서 수시와 정시를 동시에 진행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고, 고교 시절 내신이 좋은지 수능이 좋은지 비교 판단한 후 자신에게 맞는 입시 전형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합리적이며, 공교육 황폐화를 막는 길이건만, 대학의 입시 업무 효율성때문에 공교육 황폐화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셈이다.

교사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 하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조차 최선을 다 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것은 교사병일까?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우리네 입시 제도 탓이라고만 여겨진다. 정부도 대학도 다 자기 입장에서 자기들 이익만 채우려고 하니 해결이 안 되나보다. 공교육 정상화는 어떤 집단의 어떤 이익보다 우선되어야 할 과제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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