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동안 3시 50분부터 밤 9시까지 학생들을 데리고 모의면접을 했다. 학생부 종합 전형에 응시한 학생들 중 희망자에 한 해 실시했는데, 대략 60명 가까이가 함께 했다. 지도하는 교사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도움이 된다고 하면 한 번쯤은 해 줄만한 일이라고 여겼다. 면접은 비단 입시 뿐만 아니라 훗날 입사 시험에서도 필요한 것이니...
모의 면접 전에 학생들을 데리고 강의를 했다. 면접을 잘 한다고 붙진 않지만 면접을 못하면 떨어진다. 합격은 성적과 서류가 가장 큰 변수다. 면접은 성적과 서류의 사실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둘 간의 괴리가 발생하면 떨어질 수 있다고... 그리고 인성과 가치관, 전공 적합성, 서류의 진실성. 이 세 가지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게 면접이니 이에 맞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대략적으로 알려주었다.
면접을 하면서 학생들의 문제점을 많이 느꼈다. 첫째, 서류의 진실성이 떨어진다. 워낙 스펙이 화려한 학생들이 많다보니 서류에서 뭐 하나만 끌어내 심도 있게 물어봐도 얘가 진짜 그 활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다. 논문대회에 입상했다기에 어떤 논문이었는지 연구 주제와 방법론, 그리고 결론을 이야기해보라는데 이를 제대로 설명한 학생은 두 명 정도에 불과했다.
둘째, 전공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점수에 맞춰서 학과를 정하다보니 이러저리 왔다 갔다 갈팡질팡하다가 준비된 탓인듯 하다. 예를 들어 글로벌 경영학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경영학과와 글로벌 경영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 것 같냐고 묻자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글로벌 경영이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셋째, 기본적인 학습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어떤 답변을 하더라도 학생의 어휘력이나 표현력, 논리력과 창의력 정도를 보면 기본적인 학습 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출산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여자들이 아이를 안 낳아요. 그리고 여자들에게만 아이를 돌보라고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요.' 라고 답변하는 것보다는 '비혼과 만혼의 증가, 여성의 경제 활동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공평한 육아의 전담 등'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생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학생들은 어떻게 10분 20분 대화만으로 그걸 알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지만 전문가의 촉으로는 느낄 수 있다. 어떤 한 분야의 일을 오래, 많이 한 사람에게는 하나만 봐도 열을 추론해 낼 수 있다. 특히 학생들을 수업 시간에 오랫 동안 보아 온 우리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면접을 하면서 정말 인상적인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물리학과에 진학하고 싶단다. 자연 현상을 수식으로 풀어내는 물리학이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단다. 왜 실생활에 바로 연결할 수 있는 공학을 하지 않고 자연과학 공부를 하려고 하느냐 묻자, 공학은 자연과학을 토대로 발전하는 학문인데, 공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며 자신은 공학의 기초를 닦는 학자의 삶을 살고 싶단다. 그리고 자연과학이 발달하는 것이 곧 공학의 발달에도 기여하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누가 봐도 진실성이 느껴진다. (사람에게는 육감이 있다.) 인문학적 소양도 풍부하다. 독서 목록을 보면서 읽은 책에 대하여 물어보니 겸손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꽤 깊이 있게 인물 해석을 한다. 면접이 끝나고 학생들 다 나간 후에 말했다. "내가 교수면 난 무조건 얘 뽑는다. 진짜 열심히 제대로 공부할 재목 같애."
그러자 이과 담당 교사가 말한다. "걔, 외국에서 공부하다가 온 애잖아."문득 서글퍼졌다. 우리가 왜 이렇게 학생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국제학교 출신이라서 이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 외국물 먹은 애 중에서는 실속없이 겉멋만 잔뜩 든 애도 많다. - 확실히 제대로 공부를 한 애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종합적으로 고르게 모든 것이 발달된 아이같은 느낌. 공부도 열심히 하고, 활동도 열심히 하고,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고... 왜 우리는 이런 교육을 하지 못할까, 우수한 아이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 학생들을 학교에만 잡아 놓고 정답을 강요하는 입시 교육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듣고, 느끼고, 쓰고, 이야기하고 이런 과정들이 공부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듣고 답 찾는 요령만 가르친다. 그렇다보니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도 자신이 읽은 책 하나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기적이다. 인지적 측면에만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 학교 문화에서는 자기 점수만 챙기면 그만이다. 수업이 바뀌고, 학생들이 활동할 시간이 확보되고. 그리고 평가는 그야말로 종합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공교육이니 공동체 생활에서의 태도와 가치, 기술을 챙기는 수업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교사와 학부모는 입시에서 벗어날 힘이 없고, 학생은 그들에서 벗어날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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