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쯤부터 왼쪽 손바닥과 손가락이 뻣뻣하게 아팠다. 그냥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일주일 전, 아침에 일어났는데 퉁퉁 부은 손이 안 펴지는거다. 손을 펴려고 하면 그 동안은 참을 만한 아픔이었는데 이제는 비명이 나올 만큼 심한 고통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말하길, 염증이 있는데 치료를 안 하고 사용을 많이 해서 더 커지고 안 낫는거라며 움직이지 않아야 빨리 낫는단다. 그러면서 내 손에 퉁퉁하게 깁스를 씌워 주었다. 기겁을 하며 말했다. "저 할 일 많아서 깁스 못해요. 그리고 깁스 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아니 깁스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거 해야 빨리 나아요. 계속 더 나빠지면 손 못 써요. 의사 말 들어요." 과잉진료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증상이 계속 악화된 것이 사실이라 의사의 단호한 처방에 찍소리 못하고 깁스를 해야 했다.
내가 아직 진화가 덜 돼 야생동물의 본능이 남아있는지 난 아픈 티를 내면서 다니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누가 봐도 붕대 칭칭 감은 손을 가슴에 얹어놓고 '나 환자에요' 하고 다녀야 하니 정말 몸도 마음도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다. 동료와 학생들은 팔이라도 부러진줄 알고 한 마디씩 물어보지, 그 때마다 별 거 아니에요 설명하기도 귀찮고,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을 제 때 할 수 없었다. 일상 생활의 불편함이야 내 문제로 끝나지만 다른 사람들과 관계된 일이 문제였다. 모든 원고는 올스톱해서 편집진의 전화와 문자에 시달려야 했고, 학생들의 자소서 지도는 일일이 펜으로 첨삭을 해 줘야 했다. 문제는 추천서였는데 다행히 작업량이 많은건 미리 써 놓은걸 조금만 손을 보면 됐고, 나머지는 다행스럽게도 아주 간단한 추천서였다.
일주일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오늘 저녁 퇴근하자마자 일주일만에 깁스를 풀렀다. 의사 말대로 진짜 신기하게 싹 나았다. 통증도 붓기도 완전히 사라졌다. 아, 살 것 같다. 다시 평범한 일상 속으로. 이 평범함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지
세수하고 머리 감는 일조차 평소의 두 배 이상의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 생활을 1주일 하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우리가 왜 그들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하는지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익숙해진다고 해도 비장애인에 비해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편견까지... 당장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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