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휴식 중

사회선생 2017. 7. 12. 08:57

우리 아파트 경비실에는 경비아저씨가 부재중이거나 일을 할 수 없을 때에 그 상황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다. '순찰중' '식사중' '휴식중'이 그것이다. '휴식중이니 건드리지 마시오'의 의미가 처음에는 낯설었다. 어차피 일이 없는 중간중간에 쉴 수 있지 않나? 도대체 그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놈의 근거 없는 관리자 마인드는 뭐람!

휴식도 당연한 권리이건만 우리네 근로 현장에는 근로 중 휴식에 너무 인색하다. 청소근로자가 쉴 곳이 없어 화장실 구석에서 밥을 먹는다는 기사가 나오질 않나, 8시간은 온전히 근무 시간이니 앉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눈치 준다는 회사가 있다고 하질 않나, 하긴 당장 우리 학교만 해도 휴게실이 없다. 관리자는 공간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나는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생산비 대비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인',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이기적인' 인간들 때문에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현상이다.    

며칠 전 고속도로에서 대형 교통 사고가 났다. 비슷한 시간에 그 언저리 쯤에 있었던 나로서는 더욱 남 일 같지 않았다. 난 규정대로 운전하는데 갑자기 버스나 화물차가 뒤에 와서 들이 받으면 내가 무슨 아이언맨도 아니고 어떻게 살아 남겠는가? 이번 사고로 두 명이 사망하고 십 여 명이 다쳤단다. 버스 기사는 졸음 운전이었다고 시인하며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고 있다는데, 오늘 뉴스를 보니 안타깝다. 그 전 날에도 18시간 일 하고 새벽에 들어와 네 시간 자고 다시 운전대를 잡아서 너무 피곤했다는거다. 놀음하느라 밤 세운 것도 아니고, 일이 늦게 끝나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기사를 접하니 착찹한 심정이...  

나도 딱 한 번 졸음 운전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창 방송을 할 때였다. 사정상 밤 새 녹화를 하고 집에 들어가 씻고 옷만 갈아입은 다음 한 숨도 못 자고 운전하며 출근을 하는데... 4차원의 세계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 의식은 분명히 있는거 같은데 차가 순간 이동을 한 느낌이었다. 졸음으로 필름이 한 순간 딱 끊긴거지 내가 순간 이동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아, 이게 졸음 운전이구나 깨닫고 다음부터는 졸리면 운전 안 한다. 하다가 졸리면 어디든 들어가 해결한다. 그런데 운전이 생계라면 어디든 들어가 어떻게 쉬겠는가?  

제발 그냥 먹고 자는 문제 정도는 해결해 주면서 일을 시켰음 좋겠다.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드는 근무 환경이라면 그 근무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실업자 투성이다, 너 아니어도 각성제 먹어가면서 일 할 사람 많다'고, 하지 말자. 제발. 같이 죽자고 할 셈인가? 

     


http://v.media.daum.net/v/20170713120638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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