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사회선생 2017. 8. 4. 16:08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교사가 사적인 심부름 안 시킨지 오래 됐다. 그런 학생들이 군대에 간다. 뉴스에서 박찬주대장과 그 부인이 공관병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기사 내용이 흘러나온다. 내 아들이 군대 생활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면 전방에서 뺑이 치다가 다친 것보다 더 빡칠 것 같다는 사람들이 다수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위계에 의한 강압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공과 사의 구분은 왜 이리 어려운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휴가지, 식당에서 가족과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의 아저씨들도 박찬주 대장 얘기다. 그 중 한 명이 말한다. "그 새끼들 전방에서 뺑이 쳐 봐야 공관병이 편한 줄 알지. 아주 배가 불렀어. 요즘 것들은 조금만 힏들어도 난리야. 군대가 아주 개판이야. 공관병도 빽 있어야 가지, 아무나 가지도 못하는 덴데, 거기서도 못 버티면서 무슨 군대 생활을 해?" 

우리네 군대 문화는 시골 구석의 밥상 위에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박찬주 대장 뿐 아니라 군장성들도 모두 저런 생각을 하며 분기탱천하겠지 싶으니 씁쓸해진다. 공관병들이 왜 대장과 그 부인의 갑질을 폭로했을까? 난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가 떠올랐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대장이 새벽에 운전병을 깨워서 "비상이다. 지금 국방부로 가야 하니 빨리 준비해라." 이런다고 모욕감을 느끼진 않는다. 그런데 대장 부인이 새벽에 운전병을 깨워, "얘, 우리 아들이 술 마셔서 지금 힘든가보다. 술집 가서 좀 데리고 와." 아니 휴가 나온 군발이 아들 대리 운전기사 노릇까지 시키면 누군들 빡치지 않겠는가?

원래 우리의 집단주의 문화는 공과 사의 구분을 매우 모호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군대 문화는 거기에 위계까지 더해져 공과 사의 구분 없는 충성을 요구하는 이상한 문화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런 군대 문화는 우리 조직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하물며 철옹성같은 군대 내에서야 얼마나 굳건히 살아 있겠는가?

지금 군대 내 많은 장성들이 뜨끔해서 공관병들 관리에 들어갈거다. 국방부 장관도 공관병 제도를 없애고 민간인으로 대체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아니 자기들이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서 업무 처리 제대로 하면 될 것이지,  왜 국민이 세금으로 그들의 도우미 비용까지 내게 한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관병을 공적인 업무만 담당하게 하면 되는거지, 아예 대 놓고 모든 잡일을 다 시킬 민간인 도우미로 대체 시킨다고? 왜 그들의 밥을 준비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아들 바베큐 파티 해 주는 것을 국가에서 제공해야 하는가?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일이야 말로 군대 내의 기강을 제대로 잡는 일이건만, 그들은 무엇이 공이고 무엇이 사인지 구분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하기 싫은 일일게다. 참, 이상하게도 당하는 사람은 이게 사적인 일인지 공적인 일인지 확실히 구분되는데 왜 시키는 사람은 그걸 구분하지 못할까? 

모르긴해도... 대장 부부가 막말이나 폭력없이 가족같이 대해주고 사적인 일까지 시켜 미안하다며 수고비라도 잘 챙겨주고, 집에서 남아돈다는 과일이나 고기라도 부모님 갖다 드리라며 기분 좋게 싸 주면서 일 시켰으면 그들은 사적인 일 조차도 온정주의적 태도로 했을 게다. 이 사안은 사적인 일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욕감에 방점이 있으리라. 해결책은 공과 사의 구분이 돼야겠지만 원인은 모욕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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