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논문대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회선생 2017. 9. 7. 13:27

논문 대회를 한단다. 그 동안 어깨 너머로 들었을 뿐 개입할 생각이 없었는데, 심사를 해 달라기에 수시 상담으로 너무 바쁜 때라 내키지 않았지만  알겠다고 했다. 추측컨대 학생 수준에서 관심가지고 할 만한 주제를 선정했고, 그들이 충분히 실행 가능한 방법이 적용됐을 것이라고 여기며 우수작만 6편 가린거라 순위만 메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출된 논문을 보니 네 편은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주제이고, 그 중 두 편은 웬만한 대학원생보다 통계에 더 통달한 학생들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수준이다. 다원량 분산분석을 했는데 표집 샘플의 종류와 양도 그렇지만, 정말 얘가 통계 프로그램을 돌려서 산출한 결과를 이해하고, 자신이 분석한 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 둘 중 하나이다. 베꼈거나 누가 써 줬거나... 해당 학생들을 불러다 물어보고 싶었다. 질문 세 가지만 던지면 바로 밑천이 드러날 논문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이미 잘 쓴 논문이라고 많은 교사들이 보고 골라 놓았는데 내가 굳이 이건 표절이고, 이건 본인이 쓴 건지 의심스럽고, 이건 함량 미달이라며 원점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 끝난 마당에 왜 판을 뒤집느냐며 잘난척 한다고밖에 더 하겠는가? 공연히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학교 문화라는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보셨어요?"  연구부장이 묻기에 그래도 결국 한 마디 했다. "정말 이 논문 걔가 썼으면 내가 걔를 지도 교수로 모셔야 할 판이에요."

나는 공교육의 현장에서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이런 대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모르긴해도 어느 과학고에서 영재성을 가진 아이가 관심 주제가 있어서 개별지도 받아가며 논문 쓴 걸 보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학종으로 대학에 간 걸 보고 일반고의 많은 아이들이 흉내를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논문대회를 하면 정말 학생 수준에서 제법 신선하고 칭찬할 만한 논문을 써 오는 학생도 드물지만 있다. 하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 그저 생기부에 올릴 스펙이 하나, 그것도 제법 근사한 스펙이 필요한 학생이 논문을 찾아보며 이리저리 짜깁기하거나 많은 비용을 들여 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논문을 보면 볼수록 찝찝해진다. 굳이 하고 싶다면 탐구대회나 조사대회 정도로 하자. 학생에게 논문을 써 오라는 것 자체가 이미 불법과 편법을 묵인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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