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9월이 오면

사회선생 2017. 9. 1. 12:12

록 허드슨과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로맨틱 코메디같은 즐거움은 없지만 좋은 날씨때문에 상쾌해지는 9월의 첫날이다. 그냥 9월의 첫날이라, 30년 전 쯤에 본 영화 '9월이 오면'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 순간, 스토리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그 테마 음악이 내 입에 착 붙어서 흘러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최근에 그 음악을 들어본 적조차 없건만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한지? 도대체 인간의 뇌구조는 얼마나 신기한지. 그 구조와 메커니즘이 궁금해진다. 후각과 청각에 의해 뇌기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은 많이 했지만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특별히 공부하거나 많이 본 것도 아니고 그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 들어본 기억조차 없는데...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나이에 그 영화를 봤고, 음악 역시 그 이후에 들어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기억에 없지만, 그게 내 머리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필요가 아닌 감각에 의해 스스로 튀어 나오는 경험을 하고 보니 문득 우리네 학생들이 생각난다. 얘들에게도 지금의 어떤 경험들이 훗날 자기 의지와 상관 있든 없든 튀어나오지 않겠는가? 감수성 풍부한 시절에 보았던 수 많은 영화와 책들이 내 머리 속 어딘가에 남아 지금까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학생들을 대하기가 갑자기 조심스러워진다.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에게는 나의 말보다는 지금 듣는 음악이 훨씬 더 그들의 기억 속에 기분 좋게 오래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 난 학교 다닐 때 우리 선생님들이 하셨던 말씀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미지와 임팩트 있었던 말의 내용만 기억에 파편처럼 남아 있다. 그런데 록 허드슨과 지나롤로브리지다의 모습과 9월이 오면의 음악은 이렇게 멀쩡히 기억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