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너 아랍어 공부 안 했잖아

사회선생 2017. 8. 25. 14:07

수능 원서 접수의 계절이 왔다. 학생들에게 선택 과목을 조사하다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우리반 응시생 30명 중 제2 외국어 응시생이 5명인데 모두 아랍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모두 아랍어를 지렁이 닮은 글자로만 아는 학생들이다. '너희들 아랍어 글자는 알아? 모르잖아. 그런데 이걸 선택해서 본다고?.' '그래도 잘만 찍으면 점수 따기 쉽대요. 못 찍어도 3등급은 나온다고...'

소문은 들었지만, 그리고 가끔 엉뚱한 학생들이 응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제법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선택하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우리반은 약과였다. 다른 반은 열 명이 넘는다고 한다. 아랍어 광풍이다. 노력없이 점수만 딸 수 있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그런 현상을 가능하게 한 수능 선택 과목 제도는 문제이다.  

아랍어를 택하는 이유는 문제가 쉬워서 득점하기 수월하고, 높은 실력을 갖춘 학생이 거의 없으니 전체 평균도 다른 제2 외국어보다 훨씬 낮아서 조금만 잘 찍어도(?) 표준점수가 크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제2외국어는 표준 점수가 65~70점인데 반해서 아랍어는 100점이 나온적도 있다니 얼마나 어이 없는 일인가?

학생들은 귀신같이 그 약점을 캐치하고 제도를 악용하는 요령을 학습한 셈이다. 그리고 수능 시험에서 이런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치명적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도 없는 과목인 아랍어를 어떻게 수능 과목으로 둔단 말인가? 도대체 어느 석유재벌 국가에서 로비를 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해졌는지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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