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무서워서 늦게까지 공부 못 해요

사회선생 2017. 8. 31. 14:30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할 때였다. 늘 학교에서 11시까지 공부하던 학생인데, 10시에 간다고 한다. "웬일이니? 오늘은 일찍 가네?" 물어봤더니 "매일 아빠가 데리러 오시는데 오늘은 못 오신대요.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가려구요. 지금은 애들이 많이 나가니까 괜찮은데 11시에 나갈 때에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골목길 올라가기 무섭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마음이 착찹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공부하려는 의지를 억압(?)받는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등교하다가 성범죄자가 아이를 납치하려고 했는데 용감하게 탈출하여 울면서 학교에 온 학생이 있었다. 부들부들 떨며 흐느끼는데 옆에 있는 나도 덜덜 떨릴 정도였다. 여성은 남성보다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남성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 성범죄에 여성은 늘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절도나 강도, 폭행에서 여성이 덜 당하는 것도 아니다.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여성 운전자만 노린 범죄, 돈 많은 여성만 노린 강도 살인은 이제 별로 뉴스 꺼리도 되지 않는다. 여성 혐오 범죄 정도 되어야 뉴스가 될까.  

이처럼 여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범죄의 위험에 더 노출된 채 살아야 한다. 기본적인 두려움과 공포감을 가진 채....이것이 얼마나 많은 여성을 억압하겠는가? 혼자 있을 때에는 짜장면 시켜 먹기도 두렵고, 택배 물건도 현관문 열고 받기 겁난다. 밤에 혼자 편의점에 가기도 무섭고,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날에는 집에 오는 길도 무섭다. 여성은 남성이 겪지 않는 공포감을 가지고 사는 사회이다. 평등이 실현된 사회라고? 내가 동의하기 힘든 이유중 하나이다. 나는 우리네 여학생들이 미친듯이 다이어트 하고 목숨 걸고 성형하고 화장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는  것조차도 사회적 억압(?)의 산물로 보는 사람인지라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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