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학교에서 과학과 수학 교사들이 정신이 없다. 학교에서 과학중점학교를 신청했는데, 준비를 위해 교과교실 꾸미는 일부터 학교 소개 PPT 만드는 일까지 거의 매일 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 옆에서 말 시키기도 미안할 정도이다.
과학중점학교를 만들면 확실히 조금 더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할 가능성이 높아질 게다. 그럼 교사들 입장에서도 생활지도나 학업 지도를 하기가 수월해지고, 대외적으로 중시되는 입시 성적도 과거에 비해 좋아질 확률이 높다. 학교 입장에서는 조금 공 들여 큰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최악의 경우 선정되지 않아도 밑져야 본전이니 크게 아쉬울 것도 없다. 해당 학교의 개별 교사, 그것도 수학이나 과학이 아닌 사회과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중점학교로 선정되는 것이 별로 나쁠 게 없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일반고 살리기 정책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고교 서열화를 그대로 놔 두고, 그로 인해 점점 황폐해지고 있는 인문고들의 문제를 인문고끼리 경쟁을 해서 해결해 보라는 발상이 우리나라 고등학교 공교육 정상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정된 지역에서 특정 학교에 우수한 학생이 모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학교에는 우수하지 않은 학생들만 모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미 특목고와 강남8학군, 자율형 고교 등으로 고교가 서열화되어 있는데, 여기에 기타 인문계 고등학교들까지 다른 방법으로 경쟁에 동참함으로써 그들마저도 양극화 현상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 강북과 지방의 일반 인문계 고교가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는 걸 교육 당국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그 책임을 자꾸 개별 학교의 경쟁력 탓으로 돌리고, 해결책 역시 개별 학교 차원에서 개발하라고 하니 과학중점학교다, 이중언어반이다 하는 독특한 학교 운영 방안이 나온다. 과고 외고에 가고 싶은데 못 간 학생들이라도 유치해서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게 인문고 전성시대의 정책 중 하나라니!
정책이란 같이 발전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봐도 이런 식의 정책은 파행을 더 부추길 것만 같은데... 이것이 공교육정상화, 인문고 전성시대를 가져올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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