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다. 본인도 알고 주변 사람들도 알고 그로 인해 부모의 기대는 매우 높다. 그 학생이 담임 교사에게 말한다. "선생님, 쉬는 시간에 애들이 복도에서 너무 떠들어서 교실에서 공부하기 힘들어요. 조용히 좀 시켜주세요." 담임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아이는 엄마에게 말하고, 엄마는 교감, 교장에게 항의한다. "우리 애 서울대 못 가면 책임지실거에요?"
다행스럽게도 학부모가 그렇게 무식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니 복도에서 떠드는 아이들에 대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복도에서 떠드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불편해도 그건 학생이 감수해야 합니다." 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너는 공부만 잘 하면 돼. 다른 데에 신경쓰지 마. 다 엄마가 알아서 해 줄게."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란 탓인지 요즈음 함량 미달 우등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우등생이라면 학교 생활 전반에 걸쳐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학업 성적도 우수한 학생이어야 하는데, 학업 성적만 우수한 이기적인 학생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는 공부를 잘 하니까 학교에서 나를 특별하게 대접해야 돼.' '학교가 나에게 고마워해야 돼.' 라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주변 학생 몇몇이 학생이 얘기한다. "선생님, 쟤가 서울대에 가면 학교가 고마워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우리네 학교 교육이 전인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내가 공부를 잘 하면 내가 고마워해야지, 다른 사람들 심지어 학교도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발상의 근원은 무엇일까?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리더십도 있고, 교우 관계도 좋으며, 타인을 위한 배려심도 넘쳐나는 건 아니다.(그래주면 좋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과거에는 학교에서 나를 특별하게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공부를 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학교에서 모두 제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당당히 요구한다.
그들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의 요직에 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이 당연하며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여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공부를 더 잘하는 것은 머리가 좋게 태어났든, 좋은 부모를 만났든, 큰 혜택을 받은 것이고, 그 혜택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곧 있으면 담임 교사에게도 말할 것 같다. "저 서울대 가면 뭐 해 주실건데요? " 정말이지 그런 애들이 성공하는 사회.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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