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약대 몇 년을 다니다가 자퇴하고 결국 의대에 간 친구가 있다. 그렇게 시작하여 20년 가까이 그토록 원하던 의사로서의 삶을 살았건만 그 친구는 6-7년 전 쯤부터였나, 만나기만 하면 자기 의사 그만두고 싶다고, 적성에 안 맞는다고, 내가 공부해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자신이 일하는 곳은 병원이 아니라 기업같고, 자신은 의사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접받으려는 의사의 권위적 태도인줄만 알고, '조직 생활 다 그렇지, 그래도 너희는 훨씬 나은거야. 얘가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그랬다. 그런데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보낸다는 문자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오늘 당신에게 진료받은 외래 환자가 몇 명이다, 수술 환자 몇 명이다.' 이런 식의 문자를 보낸다며 보여주었다. 이는 '당신이 우리 병원의 수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아느냐? 알고 분발해라.' 이 말을 돌려서 한 셈이다. 심지어 회의 자리에서는 이사장이나 원장이 특정 의사를 지목하면서 '그 과의 환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수술 건수가 너무 적다. 지금 우리 병원의 적자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느냐?' 고 하며 면박을 주기 시작했고, 친구도 예외가 아니어서 결국 병원을 그만뒀다. 병원의 처사에 자존심도 상했고, 의사와 환자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보는 병원이 싫어졌던게다. 의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치료 방법에 병원이 개입하며 수익을 내라고 하니...
방황하는 친구에게 넌지시 "개업을 하지 그래?" 물었다. 그 친구 왈, "개업은 더 힘들어. 본전 뽑으려면 돈 벌어야 하거든. 그리고 돈 벌려면 환자를 보면 안 돼. 정상인을 봐야지. 비만치료, 노화방지, 체질개선, 피부재생같은... 별 효과도 없는거 뻔히 알면서... 그 짓도 하기 싫다. 할 줄 아는 것도 칼 쓰는거 밖에 없고...'
그런데 나도 요즈음 아침마다 학교에서 보내는 문자를 받고 있다. '어제 자율학습에 당신 반의 학생 중 몇 명이 참여했고, 참여율은 몇 %입니다.' 수익 창출 운운하는 문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그래도 이런 문자가 별로 달갑지 않다. 성과와 업적으로만 교사를 평가하려 하고, 개별 교사에게 믿고 맡겨도 충분한 사안에 대하여 자꾸 압박하려는 것같은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현재의 자율학습 문자 뿐 아니라 그 다음, 그 다음의 문자가 무엇일지 그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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