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춤추는 생활기록부

사회선생 2016. 2. 2. 13:44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대대적인 생기부 수정 작업을 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교육청 장학사의 점검 후 많은 부분의 원칙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이게 원칙인지도 의심스럽다. 교육부 매뉴얼에는 이런 사항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칙의 취지는 지역성, 계층성,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 성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학생들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는 삭제해야 하고 '워커힐 호텔'에서 연수를 받았다는 것도 'OOO 호텔'로 바꿔야 하고, 대학명과 교수명은 무조건 OOO으로 바꾸어야 한단다. 그 뿐 아니라 각종 대회는 '행사'로 바꿔서 쓰라니... 이미 대회로 학교에서 행해졌고 수상도 그에 따라 이루어졌건만 이를 모두 행사로 수정하라니.... 교사들이 모두 입이 나올만 하다.

새로 제시된 원칙의 취지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정말 취지대로 가려면 생기부에 기록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검증할 수도 없고, 실명을 기재할 수도 없는 활동들을 왜 담임들이 기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한들 무슨 효과가 있는가? 눈 가리고 아웅이지... 성적도 생기부에는 분명히 나와있고, 수상경력도 기재되어 있는데 자율활동이나 세부활동에는 굳이 다시 언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원칙도 이해하기 힘들다.  

예전에 특목고 고등학교 입시를 담당했던 교사와 사석에서 이야기를 하던 중 정말 생기부만 보고 뽑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지운 게 많은 학생일수록 우수한 학생이라고 보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상경력이나 활동 상황에 지운게 많은 아이들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런 학생 치고 성적이 별로인 학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생기부 기록만 화려하면 대학가는 줄 알고 많은 요구들을 해 온다. 고급 수학 강의를 개설해 달라 - 수학 실력과 상관없이 강의를 이수했다는 기록이 들어가므로 - 각종 대회와 상을 만들어 달라, 수업 시간에 세부활동을 상세히 써 달라... 차라리 공부 열심히 하게 해 달라고 하는 편이 맞다. 공부가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옳다. 그 다른 길을 많이 만들어주고 대학 나온 아이들과 차별받지 않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굳이 공부가 아닌 아이들을 대학에 가게 하기 위하여 생기부 부풀리기를 하는 작금의 행태가 나는 정말이지 불편하다. 이런 식의 생기부 작성이 학생들에게 편법과 거짓, 요령 등만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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