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학생 상담보다 중요한 부모 상담

사회선생 2016. 3. 15. 08:48

교사라는 직업의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는 타인의 삶에 직접 그리고 비교적 깊이 관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담임 교사는 더욱  그렇다.  가정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려 하면 인권침해이고 가정 사정에 관심 끊은 상태에서 사건 사고라도 나면 직무유기가 된다. 폭력 가정인줄 모르고 있다가 학생이 끔찍한 일이라도 당하게 되면... 담임은 뭐 했냐고 손가락질 받지 않겠는가?

담임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늘 이런 외줄타기 같은 학생에 대한 책임때문이다. 학년 초라 학생들의 신상과 입시 계획에 대해 파악하기 위하여 면담 중이다. 한 학생이 면담 도중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지원을 받는다며 혹시 기회가 되면 꼭 자신에게 기회가 오도록 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봤더니 부모님 모두 회사원으로 기재되어 있는데다가 아이도 얘 하나밖에 없어서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는 부모님 모두 직장 생활 하시는 걸로 나와있는데 왜 경제적으로 어렵다는거지? 무슨 사정이 있니?' 물었다. 그랬더니 눈물을 팍 터뜨린다. 아빠가 도박에 미쳐서 도박빚을 지고 사라진 지 1년 넘었고, 지금 엄마가 그 빚을 갚으며 힘들게 살고 있단다. 나는 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박빚은 안 갚아도 되는거 아닌가, 그리고 정말 남편 앞으로 된 다른 형태의 빚이 많으면 이혼하고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엄마가 아이를 맡아 키우면 되는거 아닌지...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남의 가정사에 내가 뭐라고 훈수를 둔단 말인가, 그것도 아이 앞에서... 그냥 알았다고 하고 말았지만 과연 정말 그런 사정일까 반신반의하게 된다.

아이는 한 수 더 떠서 내게 엄마가 자기때문에 아빠같은 사람이랑 이혼 안 하고 참고 사는거기 때문에 자신은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하며 계속 우는데, 아이의 성적은 대학에 갈 만하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심리적 부담감이 내게도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는 이미 정서적으로 피폐해져 있다. 공부가 되겠는가?

교사들은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한 부모들을 만난다. 아이는 부모의 삶이 투영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부모이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 기관은 많아도 부모를 대상으로 한 상담 기관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인데, 부모 역할을 제대로 알려 주는 곳은 없다. 그냥 각개전투로 시행착오를 거쳐서 터득하거나 자신의 부모 방식을 답습한다. 심지어 삶에 시달리면 그 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럴 때 그들의 아이는 어떻게 되겠는가? 힘들어 하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 뒤에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모가 있는 것 같아 참 안타깝다. '아이 키우기 힘드시죠?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언제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이야기하세요' 뭐 이런 상담 기관이 학교마다 교육청마다 있으면 좋지 않을까? 참고로 이건 전문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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