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순직이 아니라니

사회선생 2015. 12. 17. 20:24

추운 날이었다. 운전을 하다가 건설현장을 지나는데, 한 무리의 일용직 근로자들이 퇴근 시간인지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체감 온도 영하 10도라는 날에도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저들이 받는 임금은 얼마나 될까? 그나마 날씨때문에 일꺼리마저 끊기지는 않을까? 저렇게 일하다 다치면 제대로 산재 처리는 받을까? 며칠 전에 한 근로자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임금 5만원 때문에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오버랩되며 답답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세 끼 밥은 먹을 수 있으며, 등 붙이고 잘 공간이 있고, 애들 학교 보내고 노모 병원 보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그게 2만불을 넘는 국가에서 '인간'에게 해 줘야 할 일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그들의 고단한 삶'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조를 만들고,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저녁 뉴스를 듣다가 또 열받았다. 소방공무원이 신고 받고 출동하여 벌집을 제거하다 벌에 쏘여 사망했는데 순직이 아니란다. 아, 듣는 나도 돌겠는데, 유족들과 동료 소방공무원들은 오죽할까? 도대체 대한민국 정부가 제정신인가? 공무원연금법(제3조·61조)에 따르면 공무 중 공무원이 사망하면 ‘공무상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공무상 사망)이나 ‘순직’으로 나뉘고, 순직과 공무상 사망은 유족보상금과 유족연금 등에 차이가 있다. 공무상 사망은 사무실 등 일반 근무 중에 숨진 경우이고 순직은  ‘재난 · 재해 현장에서 화재 진압이나 인명 구조 작업 중 입은 위해 또는 이에 준하는 위험 업무 중 입은 위해’로 사망한 경우에만 해당된단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공무원법이 행정공무원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소방공무원과 경찰공무원의 경우는 순직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승용차 타고 출장지 가는 것은 순직이 아닐 수 있지만, 소방차 타고 현장 출동하는 것은 순직일 수밖에 없다. 너무 성격이 다르지 않은가? 둘째, 혁신처가 지나치게 소극적인 해석을 했다는 점이다. 말벌에 쏘여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이에 준하는 위험 업무'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다.왜일까? 누군가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해석을 누군가를 위해서는 하지 않았다고 본다면 내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생각을 하는걸까?  

뉴스를 보면서 열받은 나는 '순직 처리 안 해주면 전국의 소방공무원들 노조 만들어서 순직 처리 요구하며 다 파업해야 돼. 저렇게 취급받는데 어떻게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서 일 해?' 노조의 행태에 환멸을 느낀 적이 많지만, 소방공무원들은 노조라도 만들어 뭔가 집단 행동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안전 장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서 자비로 사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제 죽어도 이런 취급받는다니...그냥 가만히 참아야 하는가?  정치판은 공천권 두고 분당이다 뭐다 더럽게 시끄럽던데, 제발 할 일들 좀 해 주길. 눈을 위 말고 아래로 좀 돌려보길.   


P.S. 노조에 환멸을 느낀 경험은 개인적으로도 한 적이 있지만 아주 비슷하게 귀족노조들의 모습에서 본다. 노조가 노동자들의 계층을 나누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내부에서조차 하위 계층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행태가 보이기 때문이다. 완장 두르고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노조의 모습에서 쟤들이 진짜 노조 맞아 생각하게 할 때가 많다. 진짜 노조가 필요한 근로자들에게는 노조가 없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대학교수들은 노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중인가보다. 설립금지 조항이 헌재로 간다니.. 아무리 봐도 대학교수는 노조 필요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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