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수시 모집을 앞두고 1학기 생기부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맡은 동아리 부서 학생들의 특기 사항을 입력해 주고, 가르치고 있는 사회문화 시험에서 1등급을 받은 학생들에게 과목별 세부 사항을 써 주는 것이 일이다. (담임들이 챙겨야 할 생기부 작업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다. 정말 이리저리 봐도 담임과 비담임은 정말 천지 차이이다. 아무튼!) 사회문화 1등급 받은 학생들 명단을 보니 총 14명이다. 350명에서 14등 안에 들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높은 학업 성취 수준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과목별 세부 능력 특기 사항을 기록해 주려고 그 학생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니 같은 1등급이지만 성취 수준은 차이가 꽤 크다. 최고점을 받은 학생이 교과 학습 능력이 정말 뛰어난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그 학생은 필기 시험을 잘 본 것 이상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조리있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학습 내용을 질문을 했을 때에 아주 기본적인 내용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기 일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야 하는 경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쉽게 질문을 바꿔가며 물어도 소극적인 태도로 답변했다. '잘 모르겠어요' 교사의 경험에서 오는 촉으로 판단컨대, 부끄러움 타는 성격떄문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회문화과의 성취 기준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다'라고 한다면 그 학생은 분명히 성취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이건만, 필기 시험에서는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필기 시험만으로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는 데에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기 시험이 무용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기본적인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떤 학습에서든지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확장적,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부분의 평가와 측정 - 이 말도 심히 거슬리는 부분이 있지만 - 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학교에서 행해지는 서술형, 논술형 문제는 학생이나 교사들 모두에게 그저 또 다른 지필 평가의 하나일 뿐, 고등사고력을 함양시키는 문항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1등급을 받은 다수의 학생들은 비교적 이해력도 빠르고 사회적 감수성도 높으며, 지적 호기심이 많아서 수업에 꽤 적극적으로 반응했던 학생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지필 평가의 중요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 시험 1등과 학업 성취 수준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이 괴리를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는다. 과연 사회과만의 문제일까? 그 간극을 메꿔주며 종합적인 사고력을 증진시켜 주기 위한, 학교에서 교사들이 실제로 활용 가능한 평가 도구를 만들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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