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멀쩡하던 인쇄실을 폐쇄하고 트랜스포머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인쇄 기계를 들여와 교사들에게 고사지 인쇄를 맡겼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비용 절감이 꽤 큰가보다 추측만 할 뿐이다. 학교에서는 대학 입시와 더불어 비용 절감이 가장 큰 두 개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아껴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가 문제는 될 수 있지만, 아껴서 나쁠 것은 없으니 그것을 탓하지는 않겠다.
단 한 두장 복사할 때에도 교무실을 떠나 인쇄실까지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지만 아무튼 교사들은 그 트랜스포머급 인쇄 기계의 사용법 연수까지 받으면서 친해져야 했다. 하지만 교사들의 탓인지, 기계의 탓인지 지난 중간고사 때에는 시험지를 인쇄할 때마다 종이가 걸리고 기계가 결국 작동을 멈춰서 당장 다음날 시험을 봐야 하는데 시험지 인쇄가 어려운 상황까지 발생했다. 많은 교사들이 당황했고, 나 역시 지난 중간고사에도 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번 기말고사도 걱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서도 겁이 났다 보다. 평소에도 자꾸 종이가 걸려서 사용이 어려워지자 이번 기말고사는 다시 인쇄실을 가동한다고 인쇄실에서 하라고 했다.
인쇄실을 폐쇄하고 복사기를 치운 후 그 인쇄기계를 들여온 것이 얼마나 비용 절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비용에는 교사들과 인쇄실 업무 담당자의 근로의 편의성과 복지까지 고려되는 것이 마땅하다. 당장의 이윤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당장의 이윤에만 급급한 사람치고 돈 버는 사람 못 봤다!)
그런 비슷한 조짐이 보이기는 했다. 인쇄 기계를 처음 들여올 때에는 갱지도 쓸 수 있다고 했다는데, 알고 보니 갱지는 쓸 수 없었다. 학교 인쇄실에는 이미 대량으로 구입해 놓은 많은 갱지들이 있는데, 그것을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것이 소진될 때까지는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가정통신문은 인쇄실에 맡기라고 것이었다.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구 인쇄실에 가 보면 이미 인쇄실 담당자는 다른 업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인쇄실에 상주하지 못했고, 출입문에 '인쇄 업무가 있으신 분은 ~ 번호로 연락주십시오.'라고 붙여 두었다. 난 그걸 보고 근로자를 생각하지 않는 행태에 화가 났다. 그건 마치 수업을 하고 있는 내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지금 교무실로 내려와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호출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놀아? 수업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까지 해서 나를 불러내서 또 다른 일을 시켜야 돼?' 모르긴해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휴대전화번호 붙여놓으라고 누군가 지시했을테고 그래서 담당자는 그렇게 해 두었으리라...과연 자신의 휴대전화번호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주며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부르라고 '자발적으로' 공개할 근로자가 몇 명이나 될까? 도저히 전화까지 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그 앞에 두고 온 적이 있었다. 비용 절감 좋은데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 - 교사들을 비롯하여 - 의 편의와 복지도 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제발. 교무실 복사기의 재림과 인쇄실 업무의 복귀를 바란다. 그리고 인쇄실의 근무 환경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 방에서 잉크 냄새와 화학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인쇄실을 볼 때마다 갑과 을이 생각나서 너무 씁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무환경 바꿔주려고 인쇄실을 없앤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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