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지켜지지 못할 규정이라면

사회선생 2015. 5. 8. 11:30

 체육대회 날이다. 학생들은 학급별로 자신들의 단합을 과시하고 더불어 개성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특별한 표식을 하기를 원한다. 화려한 머리띠를 한다든지, 도저히 평소에는 못 입는 작업 바지나 촌스러운 원피스, 코믹하게 만든 한복을 입는다든지 아무튼 자신의 반을 '특별하게' 꾸미고 싶어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늘 문제가 생긴다. 그 비용 - 적게는 몇 천원부터 많게는 만원대 후반까지 - 을 부담하고 싶어하지 않는 학생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와 교육청에 민원이 제기된 적도 있고, 결국 사지 않고 체육대회날에 등교를 하지 않은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체육복 외에 학급이 개별적으로 다른 옷을 입는 행위를 금지하며, 그 럴 경우에는 응원 점수에서 감점을 하겠다고 초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3학년 학생들은 거의 전체가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 화려한 원피스부터 한복까지 꾸며 입고 나타났다. 아직 순진한(?) 1,2학년들은 소심하게 머리띠나 양말 정도로 약소하게 표식을 했고, 하지 않은 반도 있다. 모르긴해도 그들도 생각할거다. '내년에는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든 말든 우리도 3학년 언니들처럼 꼭 해야지.'

 학교 입장에서는 '우리는 책임을 다 했다'고 면피할 수 있겠지만, 교육적으로는 정말 옳지 않다. 하지 말라는 것을 그러거나 말거나 하면서 학생 다수가 어겼다면 이는 탈법이나 위법을 정당화하는 법의식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 자체가 교육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원칙은 신중하게 만들어져야 하며, 원칙이 만들어졌다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옳다.

 차라리 절대로 만원을 넘으면 안 된다든지 하는 원칙을 세우고, 정말 어려워서 힘들어 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교 차원에서 지원을 해 주는 방법이 어땠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누군가 이의 제기를 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에서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한 건 학생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책임 없다.' 고 대응하는 것은 정말이지 비겁하고 치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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