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맨발에 슬리퍼

사회선생 2015. 5. 28. 13:38

남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탓인지, 시대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권위적인 학교 문화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튼 오랫동안 '교사다운' 매우 보수적인 복장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니 있다? (아, 모르겠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보수적인 복장에서 벗어나 이제 한여름에는 맨발에 슬리퍼 신고도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할 수 있는 아줌마 베짱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도 스타킹을 반드시 신어야 하고, 치마는 무릎을 가려야 하며, 속이 비치는 얇은 블라우스는 절대 입어서는 안 되는 줄 알았던 시절에 비하면 내게는 매우 큰 일탈이다. 사실 여전히 덧신이라도 신는 것이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 문화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지라 - 오늘처럼 신고 옷 덧신에 구멍이 나면 새로 덧신을 가서 사는 번거로움 대신 기꺼이 맨발을 선택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맨발이면 좀 어때?" 여전히 보수적인 선배 교사들의 시선을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골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맨발을 보는 그들의 시선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맨발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이게 참...

그런데 여전히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있다. 그런 보수적인 선배 교사들과 유사한 시선을 나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소매 티를 입고 교실에 들어가거나 팔만 들어도 속옷이 드러나는 짧은 치마나 가슴골이 보이는 상의를 입은 교사들을 보면 거슬린다. 따지고 보면 맨발이나 짧은 치마나 뭐가 그리 크게 다른가? 옷을 어떻게 입느냐의 차이일 뿐 그것에 위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도를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취향과 유행과 익숙함의 차이일 뿐인데... 다행스럽게도 말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조금 거슬린다고, 아무리 후배라도 지적질같은 짓을 하지는 않는다. 진지하게 "선생님의 맨발과 저의 민소매 티셔츠가 뭐가 다르지요?" 라고 상대방이 물어온다면 나는 답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풍기문란도 아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딱히 안 된다고 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천박하다 고상하다는 것도 결국 가치 판단과 취향의 문제일 뿐이고, 취향을 탓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교사다움이란 무엇일까? 교사다운 옷차림이란 무엇일까? 그 근거는 무엇인가? 교육적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해 볼까 하니 골치 아프다. 생각 끝. 수업이나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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