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지각계를 만들면서

사회선생 2014. 11. 28. 08:43

 결석계는 들어봤어도 지각계를 내라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우리 반에 기말고사 결시자가 있다. 기말고사 기간 중 하루는 결석, 하루는 지각을 해서 세 과목의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결시자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어차피 학교 교육이 자신에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실기 학원에서 애니메이션 그리기에만 매진하고 있는.... 어쨌든 결시했으므로 결시자 처리를 위하여 결석계를 제출해야 하는데, 난데없이 지각계를 함께  제출하란다.

 지각계라니... 무엇이든 근거가 남아야 한단다. 아니 출석부에 기재했고, 나이스 출결에 기재했으면 됐지 무슨 지각계까지 만들어내냐고 실소를 했지만, 이것이 우리 학교의 일처리 방식이다. '절대로' 책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서류를 만들어 낸다. (서류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은 정말 구시대적이다. 그냥 믿고 맡긴 후 문제가 생기면 문책하면 되지, 그걸 왜 일일이 서류로 만들어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역시 책임지기 싫어하는 행태 아닌가? ) 그 동안 대학 면접 시험때문에 결시한 경우에도 응시표와 응시일정만 제출하면 되는데, 굳이 해당일에 면접 시험을 봤다는 확인서류를 제출하라니 난감하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발행하는 응시일정에는 면접일 11.17~11.19 이런 식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학생은 자신의 수험 번호에 따라 17일에도 19일에도 볼 수 있는데, 대학에 요청하여 이 학생은 17일에 면접 시험을 봤다는 확인서를 받아 내라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황당해하고, 학생은 당황스럽고, 교사는 번거롭고 힘들다. 어느 학생은 생리통이라며 하루 결석을 했는데, 병원에 가서 생리통 확인서를 떼어 오라고 했다며 그런 것도 병원에 가서 말하면 떼어 주냐고 해당 학생이 담임이 어이없어 한다. 아, 미치겠다. 설사 그 학생이 생리통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고 결석했다면 그냥 생리통 결석으로 처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학부모가 동의했는데 또 무슨 병원 확인서를 떼어오라는 것인가?

 요즈음은 업무 간소화를 위해 있는 서류들도 없애는 판이다. 각자에게 믿고 맡긴 후 - 자율성과 책임감은 양면 아닌가? - 문제가 생겼을 때 문책하면 된다. 혹시나 문책해야 할 일조차 생기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한 가지 서류면 될 것을 서 너 가지 더 만들어서 - 대부분 형식적이고 조작된 서류들 - 여러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며 동시에 '난 널 못 믿으니 문서로 내.' 이런 일처리 방식은 학교답지 않다. 사실 그 기저에는 '내 책임 아니에요.' 라고 굳건히 방어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책임이 두려워 모든 책임을 아랫 사람에게 분산 혹은 미루기 위하여 시시콜콜 문서화해야 하는 사람을 상급자로 둔 조직은 많이 힘들다. 예나 지금이나 늘 해왔던 일이건만 더 힘들다고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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