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자기소개서를 자기가 쓸까?

사회선생 2014. 8. 19. 22:30

 우리반 학생 서 너 명이 입학사정관제로 대학 수시 입학을 준비 중이다.  자기 소개서 준비에 열심이다. 늘 그렇듯이 담임 교사인 내게 자기 소개서를 보여주며 코멘트를 해 달라고 가져왔다. 열심히 성의껏 써 왔지만, 완성도는 많이 떨어진다. 내용은 추상적이고 진부하며 문장 또한 너무 길어 주어와 동사 찾기가 힘들다. 글 쓰는 연습을 별로 하지 못한 티가 난다. '진부하지 않은 너만의 것이 빠져 있다, 가능한 한 읽기 쉽도록 간결하게 표현하라'며 첨삭도 해 주고 설명도 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해 온 자기소개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단기간에 완성도가 높아질 것 같지 않아서, 아주 잠깐 동안 '그냥 내가 써 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비교육적이고 매우 위험한 짓이라는 걸 알기에 그냥 헛생각 한 번 하고 말았지만, 문득 과연 자기소개서를 자기가 직접 쓰는 학생이 몇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학생에게 글을 잘 쓰는 부모 혹은 그런 사람을 동원할 자원이 충분하다면 그 학생은 완성도 높은 자기소개서를 제출할테고, 그것은 입시 자료의 하나로 쓰여서 합격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전형 자료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학생들을 기만하는 것이고, 활용한다면 이는 매우 불공평한 전형이 될 수 있다.

 입사정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 방향도 옳다. 예를 들어, 수의대라면 영어 수학만 잘 하는 학생이 아니라 동물에 대한 애정이 깊으며, 동물보호단체 봉사 활동도 열심히 했고,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들어와서 성실하게 공부 열심히 할 것 같은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영어 수학만 잘 해서 들어온 학생보다 훨씬 훌륭한 수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수의대 교수라도 나는 그런 학생을 선발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런데 자기소개서가 타인에 의해 쓰여질 수 있고, 봉사 활동 등의 외부 활동이 부모의 정보 능력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래서 입학사정관이 그럴 만한 학생 선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사회적 성숙도가 높아질 때까지 재고되더야 한다. 

 적어도 '엄마 자기 소개서 어떻게 해?' 라고 할 때, 그래도 네가 성실하게 써야 한다는 부모가 '이리 줘 봐. 엄마가 써 줄게.' '입사정 전문 학원에서 자기소개서 잘 써 주는 사람을 찾아보자.' 는 사람이 없을 때 입사정은 행해져야 한다. 돈만 내면 그 대학 그 전형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써 주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한, 입사정은 결코 입사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입학 제도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