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 수업을 하러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부채질을 하며 입이 댓발 나와있다. 에어컨이 고장났다며 교실을 옮기잔다. 수업 시작했는데 옮길 만한 교실 알아보는 것도 여의치 않고, 에어컨 수리 신청했으니 조금 참으라고 하고 그냥 수업을 했다. 처음에는 더웠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괜찮았다. 나만 괜찮은건가 싶어서 물어봤다. "얘들아, 괜찮지 않니? 나만 그런거니?" "아니요, 생각보다 괜찮아요." 정말 그랬다. 밖에서 걸어서 6층 교실까지 헉헉대로 올라오려면 더웠겠지만 가만히 앉아 선풍기 바람과 창으로 솔솔 들어오는 바깥 바람을 쐬니 30분도 지나지 않아 충분히 괜찮았다. 견딜만한 나쁜 상태가 아니라 썩 괜찮은 상태였다.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도 쾌적하고... 그런데 에어컨을 켜고 앉아있었다면 아마 느끼지 못했으리라... 속으로 그냥 고장난 상태로 여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교감선생님에게 에어컨 고장났다고 고쳐달라고 했다.)
문득 우리들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레 겁을 먹어서, 혹은 너무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어서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그네들이 자신의 집에 있는 에어컨이라고 해도 이렇게 종일 틀어놓고 지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름에는 가디건 입고, 겨울에는 반팔 입고 실내 생활한다. 우리 집에서는 전기값 생각해서 못 틀지만, 학교에서는 내가 내는 전기값 아니니까 틀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물론, 더위를 참는 인내 교육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에너지를 아끼는 교육은 해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들도 실내 온도를 법으로 정해 놓고 난방과 냉방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조금 먹고 살만해졌다고 이렇게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천민자본주의가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자들에게만, 혹은 졸부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조금의 더위나 추위도 참으려 하지 않고, 에너지를 마구 써대는 우리네 삶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내 돈 아닌데 어떠냐고 하는 것은 내가 내 돈 벌어 내 맘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천민이 되고 싶지는 않지 않은가? (뭐, 천민이 동일한 의미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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