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으로 바뀌면서 자사고 폐지론에 힘이 더 실리게 되었고, 이에 많은 학부모들이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긴 그들 입장에서야 비싼 학비 부담해가며 자율형 사립학교에 보내놨는데 학교를 없앤다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율형 사립고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정부의 재정 지출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사학의 자율성을 증대시켜주려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해진 욕구를 충족시켜주려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목적이 제대로 시행되는 것 같지 않다. (근본적으로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정부에서 책임지는 의무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교육 정책이 달갑지 않다. 자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위계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도 돈 없는 사립은 점점 별볼일 없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은 사실 여러가지 면에서 파행적이다. 첫째, 사립학교의 비중이 너무 높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우리나라 역시 앞으로 고등학교 의무 교육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큰 걸림돌 중 하나 과반수가 사학이라는 것이다. 공교육기관인데 실질적으로 개인(재단) 소유이다. 소유주는 개인(재단)인데 운영은 세금으로 한다. 근본적으로 정부와 사학재단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둘째, 고등학교가 명문대학을 가기 위한 징검다리이다. 언제부턴가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해진 욕구 충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많은 고등학교들이 설립되었다. 기존의 인문계고 외에 특성화고, 특목고, 자율형사립고, 자립형사립고... 다양성? 글쎄... 그들의 목적은 사실 동일하다. 명문대학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는 것이다. 학교의 위상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소위 SKY에 보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관대하게 봐서 특성화고는 취업을 목적으로 하고, 특목고는 그야말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고 치자.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그런데 자율형은 무엇인가? (자립형은 차라리 낫다. 마치 현재 존재하는 사립초등학교처럼 우리는 정부의 돈을 1원도 안 받는대신 간섭도 받지 않고 학생 선발도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니... 그래 그들만의 리그를 갖게 해 준다고 치자. 초등학교도 사립초등학교를 운영하지 않는가?) 그런데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는 무엇인가? 사실 정체성도 모호하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대신 교육과정 편성을 일정 부분 자율로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인데, 정말 정부 지원금 없이 운영되고 있는지? 학교 입장에서는 돈이 더 들어도 조금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을 모아 놓을 수 있고, 학생 입장에서는 공부 못 하는 애들이 없는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 이것 말고 무슨 자율형이 무슨 존재 이유가 있는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건만 돈이 있는 사립학교는 학생 선발권을 좀 주겠다는 것일 뿐...이것이 다양성 실현에 기여하는가?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으로 가야 한다. 의무교육은 교육 기회의 평등과 더불어 무상 교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기회의 평등은 교육 내용의 평등도 포함하는 말이다. 누구나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해야 하며 동시에 인문계든 특목고든 특성화고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학생의 선택을 존중해 주면 된다. 특성화고는 취업을 목적으로 하고, 특목고는 특수 목적에 충실하게 하고, 인문계 고는 학력 증진에 충실하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선택은 그 안에서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로 자꾸 만들어가는 것은 적어도 고등학교 교육에서만큼은 옳지 않다.
어느 자사고의 교장이 입시 설명회에서 '우리 학교는 입시 뿐 아니라 인성 교육에도 매진하고 있다. 그래서 1인 1기의 악기 교육을 하며 오케스트라도 운영하고 있다'고 자랑하자, 한 학부모가 뒤에서 비아냥거렸다. "이미 악기 교육 다 받은 애들만 뽑아 놓은거면서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인양 생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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